[2030 칼럼] 프랜차이즈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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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지난해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부자가 되는 방법을 다룬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엉뚱하게도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은 장사와 사업의 차이였다. 세이노의 분석에 따르면, 장사는 지리적 장소를 중심으로 근거리 원내의 사람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반면 사업은 지리적 장소의 한계를 뛰어넘어 원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장사는 지리적 장소가 곧 고객과 만나고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영업장소이기 때문에 위치가 중요한 반면 사업은 지리적 장소를 벗어날 수 있다. 요식업을 떠올려보면 프랜차이즈는 ‘사업’이고 동네 음식점은 ‘장사’다. 물론 지리적 장소에 구속되지 않는 프랜차이즈 본사만 사업이고 실질적으로 지리적 장소를 가지고 운영하는 가맹점들은 사업이 아닐 것이다. 예컨대 프랜차이즈 본사 인테리어는 관심 대상이 아니지만 가맹점 매장의 인테리어는 비극적 갈등이 빚어질 만큼 장소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현대국가 정치, 헌법 통해 표준화

비슷한 규범 약속 '가맹 체제' 닮아

미국 ‘갑질’ 민주주의 자체에 위기

본사·직영점 이익 우선시하는 듯

만연한 표준화·규격화·비인간화

자비·용서 없는 무한경쟁만 조장

그의 분석에서 핵심은 물리적 공간성(지리적 장소)의 여부다. 흥미로웠던 이유는 물리적 공간성의 차이가 종교와 정치의 본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가맹점이 본사 기준에 따라 동일한 품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약속한다는 것이다. 맥도날드 햄버거는 외국에서도 한국에서 먹는 것처럼 균질한 맛이다. 반면 장사는 편차가 존재한다. 만약 우리 동네에 엄청난 맛집이 있다면 덕분에 근거리 원내 사람들의 복지는 올라갈 것이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장사는 탁월성과 유연성을 기대할 수 있지만 위생 불량과 같은 자의적인 횡포도 우려할 수 있는 반면 프랜차이즈는 표준화된 규격의 세계다. 따라서 프랜차이즈가 주는 신뢰는 대단한 맛집은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을 보장한다는 안정감이다.

현대사회의 정치는 종교와 같이 민주주의와 헌법을 통해 표준화되었고 이 프랜차이즈는 지리적 장소, 곧 국가에 관계없이 비슷한 법적 규범을 약속하고 임의성을 면한다는 가치를 가진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사업을 주도해온 프랜차이즈 본사 격인 미국이 가맹점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면서 본사와 자신의 직영점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탓에 가맹국들이 부담해야 하는 로열티 지불이 상당히 높아졌다. 또한 갈수록 첨예해지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은 가맹점의 존속에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편 가맹국들은 프랜차이즈를 재생산하며 자국 내 불평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마치 수도에 본사와 직영점을 두고 지방에 가맹점을 두려 하는 시스템이다.

표준화된 규격의 세계가 위기를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을 다르게 바꿔본다면 물리적 공간성의 배제가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지리적 장소가 필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숨 쉬고 먹고 자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우리 몸이 위치할 공간을 필요로 한다. 정신만을 가지고 사업하는 프랜차이즈 본사와는 다른 것이다. 삶의 직접적인 수행 공간에서 세계는 고정된 규정적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적 장소는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사람은 언제나 동일한 값을 산출할 수 없고 표준화될 수 없다는 점에서 기계와 다르다. 프랜차이즈는 기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외를 두지 않고 균일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 모델의 정치경제 시스템은 압도적인 기계적 효율성을 통해 사회를 빠르게 발전시키고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장사와 사업의 스케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공간, 즉 휴먼스케일을 넘어선 규모는 이제 기계의 논리 아래서 사람을 소외시키고 인간의 비인간화를 지향한다. 지리적 한계 너머에 원거리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적 시야는 초고층 빌딩에 올라서 지상을 조망하며 행인들을 점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극단적인 사례는 전쟁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대 첨단화된 전쟁은 원거리에서 버튼만 누르면 미사일이 날아가 적이라고 명명된 아무 일면식이 없는 타인을 공격하고 드론을 띄워 무차별로 폭격한다. 상대는 타격할 점으로 존재할 뿐이며 마주치지 않은 채 살인한다. 물리적 장소의 소거는 인간성이 놓일 공간을 제거한다. 이제 전쟁에는 자비도 연민도 용서도 자리하지 않는다. 기계는 아픔을 모르고 프랜차이즈의 대리인이 된 인간은 주어진 명령 외엔 양심을 가질 수 없는 로봇이 된다. 한 동네에서 카페 바로 옆에 카페를 열고 그 옆에 카페를 또 여는 프랜차이즈의 무한 경쟁 상도덕은 추상적인 자유시장 경쟁뿐 아니라 무한히 희생당하는 산업의 노동 현장과 전쟁의 폭력적 참상에도 놓여있다. 피 흘리는 것은 언제나 서로의 취약한 생명과 삶을 안고 싸우는 인간들이지 프랜차이즈 본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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