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률적 감원 앞서 졸속으로 만든 기동순찰대부터 손 봐야 [치안도 수도권 집중]
사건 많은 부산진·해운대 관할
3% 일률 감원 적용 땐 더 타격
단순 통계로 인력 감축해선 안 돼
정원 조정 앞서 직제 개편부터
현장선 기동순찰대 폐지 요구도
범죄 예방 대신 인력 부족 야기
경찰청의 지역 경찰 정원 조정안을 두고 경찰 내부에서는 ‘치안마저 수도권 공화국이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온다. 지역 경찰 인력을 재배치해 치안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경찰청의 구상이 결국 인구 많은 수도권에 경찰력을 집중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안이 치안 수요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해 지역민들의 치안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 많은데 인력 줄어… 일선 혼란
이번 정원 조정으로 부산 파출소와 지구대에선 총 165명이 줄어든다. 올해 부산에서 112 신고 건수가 가장 많은 서면지구대(올해 1~7월 1만 7477건)와 우동지구대(올해 1~7월 1만 1605건)는 이번 정원 조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서면과 해운대 번화가를 끼고 있어 사건, 사고가 많은 이들 지구대는 ‘기피 부서’로 꼽히기도 한다. 신고 건수가 가장 적은 파출소와는 17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인력 감축의 여파가 이들 지구대로 퍼질 경우 사실상 지구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수 있다.
부산에서 가장 많은 사건사고를 처리하는 부산진경찰서도 긴장하고 있다. 올해(1~7월) 부산 일선 경찰서의 신고 건수를 살펴보면 부산진경찰서의 112신고 건수는 6만 3660건으로 부산에서 가장 많았다. 해운대경찰서의 신고 건수는 4만 3002건을 기록했다. 2위를 차지한 남부경찰서가 수영서 개서로 업무 부담을 덜 것을 감안하면 이 두 경찰서는 부산에서 가장 신고 건수가 많은 경찰서다. 그럼에도 부산진경찰서와 해운대경찰서는 각각 정원 감축 1, 2위다.
일이 많은 경찰서에서 가장 많은 인력을 줄이게 되는 것은 경찰서 인원을 기준으로 각 경찰서 인력의 3% 일률 감원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일선 경찰서에선 어떤 부서에서 인력을 줄일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데 이를 놓고 서로 각 부서로 감원을 미루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 지역의 A 경찰관은 “우리 경찰서의 경우 형사·수사 사건이 많다 보니 외근 부서에서는 인력을 줄이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결국 내근 부서에서 그만큼 인력을 더 줄여야 하는데 이를 놓고도 볼멘소리가 많다”고 밝혔다.
해수욕장 치안 업무를 담당하는 부산 지역 B 경찰관은 “안 그래도 여름철 해수욕장 치안 수요가 많아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인력을 감축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당황스럽다”며 “인력 감축을 현장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순차적으로 진행했다면 이 같은 혼란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경찰 목소리 빠진 개편
경찰청이 대규모 정원 재배치에 나섰지만 정작 일선 경찰관들이 목소리를 냈던 개선안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정원 조정이 아닌 근본적인 직제 개편이 우선돼야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해 경찰은 기동순찰대를 출범시켜 지역 일선 치안을 담당하게 했다. 기동순찰대는 전국 시도청 직속으로 330개 팀이 활동 중이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선 기순대 재출범 이후 일선 지구대·파출소가 경찰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력 부족 문제가 최근 잇따르는 스토킹 등 관계 범죄 미흡한 대응, 사건 처리 지연 문제의 원인으로 꼽혀 현장 경찰관들은 기동순찰대를 ‘개편 1순위’로 지목해왔다. 하지만 경찰 정원 조정과는 별개로 기순대는 존치가 유력하다.
부산경찰청 직장협의회는 이날 오전 9시 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열고 기동순찰대 폐지와 현장 인력 확대를 요구했다. 부산 북부경찰서 직장협의회 정학섭 회장은 “기순대는 강력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목적으로 창설됐으나 실제 활동 내용은 대부분 교통 법규 위반이나 오물 투기 등을 단속하는 데 그친다”며 “기순대가 야간 당직도 서고 112 신고도 처리하면 지역 경찰의 업무 부담이 완화되겠지만 이런 역할은 좀처럼 수행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장 인력이 부족하면 112 신고가 접수되더라도 신속하게 출동하지 못할 우려가 있고 이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 몫”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지역 경찰 인력 감축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통계만으로 지역의 치안 수요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고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방침과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특히 부산은 여름철의 경우 외지 방문객 유입이 급증해 범죄발생 비율이 확대되는 특수성까지 있다. 무엇보다도 경찰 인력이 줄어들면 일반 주민들의 민생 치안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동서대 황정용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부산은 바다와 공항이 있어 육해공을 모두 갖춘 데다, 여러 군사시설까지 있어 수도권 못지않게 치안 수요가 높은 지역”이라며 “특히 주요 관광지인 만큼 외부자가 많아 통계만으로 부산이 필요한 치안 인력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황 교수는 “치안을 개선해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균형발전의 근본적인 요소”라며 “치안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통계로만 지방 경찰 인력을 줄이는 것은 국가균형발전의 방향과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