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중처법 준수 인증… 은행이 앞장서 안전평가도 [커버스토리]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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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사고에 산업재해 비상 걸린 기업들

포스코이앤씨 올해 5건 인명사고
이 대통령, 면허취소까지 예고
기업들 서둘러 중처법 인증 나서
로펌도 중대재해 대응 인력 보강
BNK는 안전평가로 리스크 관리
지역 건설사도 TF팀 긴급 구성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잇따라 5건의 인명 사고를 낸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면허취소까지 언급하며 중징계를 예고해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높아진 가운데, 건설업을 비롯한 업계 전반이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심지어 산재 위험이 높은 건설 현장이 없는 데도 ‘중대재해처벌법 준수 인증’을 받거나 은행이 직접 나서 안전보건평가를 실시하고 리스크 관리에 나서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거대 로펌들은 자체적으로 중대재해센터를 만드는가 하면 민간 인증도 실시하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포스코 사태로 정신 번쩍 든 기업들

한국예탁결제원은 근로자의 중대재해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금융기관 최초로 ‘중대재해처벌법 준수 인증’을 취득했다고 11일 밝혔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다른 건설 사업장에 비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예탁결제원에도 시설 관리를 위한 단기 파견, 자회사 등이 있기 때문에 전사적으로 안전 보건계획을 수립하고 전 직원 대상 온라인 교육도 실시했다”고 말했다. 예탁결제원은 지난 5월부터 인증 절차를 시작해 지난달 24일 최종 인증서를 받았고, 이를 적극 홍보하고 나섰다.

인증은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에서 실시하는 민간 인증으로, 사업주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서류와 현장 심사를 거쳐 발급되는 인증이다. 민간이지만 국내에선 유일한 인증이다.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재판에서 가장 크게 다투는 부분이 ‘사고 예방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다 보니, 인증 기업이 되면 형사 책임이 면제되거나 책임이 일부 인정되더라도 정상 참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건설 현장이 있는 기업들은 물론이고 일반 공기업들도 너도나도 인증에 나서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법적 다툼의 소지가 크고, 심하면 기업 대표가 ‘옥살이’를 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보니 기업들이 비용을 아끼지 않고 거대 로펌 등에 의뢰하는 분위기다. 법무법인들도 관련 인력을 대거 보강해 중대재해 대응팀을 꾸려 전방위 ‘영업’에 나서고 있다. 대륙아주의 경우 중대재해 대응그룹에만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 분야 변호사 등 30여 명이 포진해 있다. 법무법인 율촌은 중대재해센터까지 만들었다.

대륙아주 김동주 변호사는 “대통령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까지 언급한 상황이다 보니 최근 매주 한 곳 이상에서 연락이 올 정도”라면서 “지난달 열린 지자체 중대재해 웨비나에는 100여 명이 참석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BNK금융도 13일 나이스 평가정보, 한국평가데이터와 ‘기업체 산업재해 예방 사업 업무협약’을 맺고 부울경 위험산업 분야 기업을 대상으로 안전보건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산재에 취약한 업체를 발굴하면 컨설팅을 통해 산재 예방을 위한 환경 개선에 자금을 투입할 방침이다. 산재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대두되다 보니, 은행이 직접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이다.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사장이 29일 인천 송도 본사에서 연이은 현장 사망사고와 관련한 담화문 발표에 앞서 관계자들과 함께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사장이 29일 인천 송도 본사에서 연이은 현장 사망사고와 관련한 담화문 발표에 앞서 관계자들과 함께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대재해 근절 TF 꾸려 대응

포스코이앤씨 사태를 바라보는 건설업계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대한건설협회 부산지회는 최근 지역 건설사들을 한자리에 모아 ‘건설현장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긴급 대책 회의 및 결의대회’를 열었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도 지난 6일 17개 단체 부단체장,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등 연구기관과 함께 건설현장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앞으로 건설업 중대재해 근절 TF팀을 만들어 대응하기로 했다.

부산의 한 건설사 임원은 “매주 임원급 관리자들이 모여 안전관리 조치에 대해 점검하는 회의를 갖기로 했다”며 “무덥거나 비가 내리는 날씨에 무리하게 작업하지 않도록 하고, 사고 발생을 최대한 예방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안전 관리 매뉴얼을 가다듬고 관련 예산을 집행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고를 다 예방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불만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포스코이앤씨 역시 일주일간 전국 건설현장 작업을 전면 중단하고 안전 점검을 실시했는데, 공사를 재개한 당일 외국인 근로자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부산의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포스코처럼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모든 공사 현장을 중단시켜 버린다면 공사 기간이 늘어날 것이고, 나중에는 늘어난 공기를 다시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하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며 “그동안 안전 강화 대책이 없어서 사고가 난 것이 아니다. 업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규제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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