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녹조라떼에 잠긴 세계유산,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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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혁 지역사회부 차장

한반도 선사 유적의 상징인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폭우로 잠겨 한 달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등재의 감격을 채 누리기도 전에 짙은 녹조 속에서 훼손 위기에 놓인 현실은 국가적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다.

반구대 암각화는 지난달 12일 천전리 암각화와 함께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 그러나 등재의 기쁨도 잠시, 암각화는 쏟아진 비로 상부 일부만 물 위로 내민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지난달 19일 물에 잠긴 뒤로 3주가 넘었다. 대곡천의 물빛은 현재 ‘녹조 라떼’를 방불케 하고,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찌른다. 하류의 사연댐은 수문이 없는 월류형 구조여서 하루 약 30cm 배수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댐 수위는 현재 56m 정도. 지난달 침수 당시와 같아 암각화가 수면 위로 올라가는 52m까지 내려가려면 한 달 이상 걸린다고 한다.

이 답답한 현실은 이달 1일 울산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가유산청 주최 시민토론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정부는 사연댐 수문 설치를 203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은 5년 뒤 대책으로는 역부족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일부는 사연댐 해체와 반구천 일대 자연 복원 등 근본적 방안을 거듭 요구하기도 했다. 기후위기로 폭우가 반복되는데 장기 계획만으로는 유산을 지킬 수 없다는 우려에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대로 가다간 유네스코 ‘위험 유산’ 지정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위험 유산 지정은 선언적 경고에 그치지 않는다. 2007년 오만 ‘아라비아 오릭스 영양 보호구역’, 2009년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 등이 경관 가치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세계유산 자격을 박탈당했다. 반구대 암각화가 해마다 몇 달씩 ‘녹조라떼’에 잠긴다면 이런 불명예를 피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물론 당장 반구대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낼 특단의 묘책을 찾기는 녹록지 않다. 울산 시민이라면 누구나 바가지라도 들고 가서 물 한 바가지씩 퍼내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식수원 문제도 여전히 핵심 걸림돌이다. 울산환경운동연합은 “암각화가 세계유산이 됐는데 물이 중요하냐”라면서도 “시민들이 사연댐 물을 양보한다면, 대체 식수원 마련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문 설치가 오히려 유적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1965년 완공된 사연댐이 상류 대곡댐 건설 이후 식수 댐으로서 제 기능을 하는지 구체적인 검증도 필요하다. 암각화를 지키기 위한 단기 대책이든 장기 대책이든, 울산시가 안정적 대체 수원을 확보하도록 국가가 적극 지원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다.

내년 반구천의 암각화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부산 벡스코에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다. 그러나 자랑해야 할 유산이 녹조 속에 잠겨 훼손된다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까. 5년 뒤 완공될 수문만 바라보다가는 갓 등재된 세계유산의 참상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국제적 망신을 자초할 수 있다.

세계유산 등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등재 직후의 침수는 암각화 보존을 소홀히 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마지막 경고다. 반구대 암각화가 더는 ‘자맥질 유산’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도록, 지금 당장 침수를 막을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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