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스공사, 법원 판결에도 1년 넘게 어민 보상 외면
대법원, 작년 5월 패류 소음 피해 인정
염소 피해는 ‘수치모델실험’ 오류 배제
어민들 “소음 피해 우선 보상해 달라”
공사 “염소 포기하면 즉시 보상” 제안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 공기업이 언제까지 힘없는 어민을 우롱할지, 어민들 다 죽길 기다리는 건지, 정말 울화통이 터집니다.”
한국가스공사가 경남 통영 LNG 생산기지를 오가는 초대형 LNG 운반선 운항 소음에 따른 어업 피해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지 1년이 다 되도록 약속한 보상을 미뤄 어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어민들은 노골적인 시간 끌기라며 공사가 계속 어깃장을 놓으면 집단행동으로 맞설 태세라 물리적 충돌도 우려된다.
8일 거제통영고성어업피해손실보상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는 지난해 5월 가스공사가 한국해양대학교 산학협력단을 상대로 제기한 ‘염소·소음 어업피해조사용역 원상회복 및 계약대금 반환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문제의 용역은 2015년, 가스공사가 해양대에 의뢰한 ‘통영기지본부 운영 및 제2선좌 건설공사 어업피해 추가 조사’다. 가스공사가 2013년 집행한 345억 원 규모 1차 어업피해 보상에서 제외된 염소와 굴 등 패류 소음 피해 인정 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절차였다.
당시 패류는 청각기능이 없는 데다, 염소의 해양생물 위해성은 국내외를 통틀어 인정된 사례가 없다며 어민들 요구를 일축하던 가스공사는 뒤늦게 해양대에 관련 용역을 의뢰했다.
이후 2년여에 걸친 연구 조사를 거쳐 2017년 3월 최종보고서가 나왔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소음과 염소로 인한 주변 어업 피해가 상당하다고 결론냈다.
우선 소음에 대해 소리가 생물에 불편한 진동(공명)을 유발한다고 짚었다. 실제 통영기지 주변은 소음이 큰 초대형 LNG선이 매월 10회가량 수시로 오간다. 이로 인한 피해 영향권은 항로 좌우 1.3km, 생산감소율은 7.2%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염소 피해도 인정했다. 통영기지는 액체 상태로 저장된 천연가스를 기체 상태로 공급하기 위해 시간당 최대 20만여 t의 바닷물을 끌어와 열원으로 사용한 뒤 다시 바다로 내보낸다. 이 과정에서 기화기 등 핵심 설비 보호와 운전장애 방지를 위해 염소를 투입한다.
국내외 논문과 자체 생물검증 실험을 토대로 ‘피해 유발 최소 염소 농도(임계치)’를 리터(L)당 0.08ppm으로 설정한 연구팀은 통영기지 인근 48개 정점에 대한 잔류염소를 조사했다.
실측 결과, 기지에서 동쪽(거제도 방향)으로 7km 떨어진 해역에서도 평균 0.12ppm의 염소가 검출됐다. 해양생물과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준의 잔류염소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가스공사는 내부 자문단 의견을 근거로 ‘오류 보고서’라며 채택을 거부했다. 잔류염소 임계치를 너무 낮게 설정한 데다, 통영기지 배출수 잔류염소 농도를 0.1ppm 이하로 관리 중인데 실측치 평균이 이보다 높게 나왔고, 다른 잔류염소 발생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스공사는 보고서 수정을 요구했지만 연구팀이 거부하자 용역계약을 파기하고 선지급한 용역비를 돌려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였던 대구지법은 2021년 1월 용역사가 불리한 내용을 수정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것은 부당하다며 가스공사 청구를 기각했다. 염소와 소음에 따른 어업피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가스공사는 곧장 항소했다. 판결을 수용할 경우 염소에 따른 어업피해를 인정하는 국내 첫 판례가 되기 때문이다. 국내 다른 LNG 기지나 바닷물을 냉매로 사용하는 대다수 발전소까지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2심 판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염소 피해 내용 중 ‘수치모델실험’ 결과에 오류가 있다는 공사 측 주장은 받아들여 ‘염소피해조사용역’은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봤고, 대법원도 이를 인용해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대책위는 공사에 소음 피해 우선 보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공사는 ‘(대책위가) 염소 부분을 포기하면 보상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맞섰다.
이후 몇 차례 실무 협의를 통해 일부 접점을 찾았지만 염소 피해 재조사 방식과 연체금 적용 등에 이견이 커 평행선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매번 이런 식이다. 보상 한 푼 못 받고 하세월 하다 돌아가신 어민이 한둘이 아니다”며 “공기업답게 결과를 인정하고, 소음 피해부터 적극 보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가스공사는 보상을 지연 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가스공사 측 관계자는 “대책위와 기존 약정서 변경 등 여러 방안을 놓고 계속 협의 중이다. 결론이 나오면 즉각 관련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