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믿음, 왜 이리 힘들까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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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실패 빼앗는 사회>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연구 사례 담아
결과 집착하는 경직된 문화 가장 문제

<실패 빼앗는 사회> 책 표지. 위즈덤하우스 제공 <실패 빼앗는 사회> 책 표지. 위즈덤하우스 제공

“실패는 성공했다는 알리바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학생회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한 청년의 말이다. 우리 사회의 젊은 이들은 실패담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도 일종의 ‘자격’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머리로는 실패가 성장과 학습의 기회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낙인을 우려해 도전을 주저하고 실패를 숨긴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노동 시장이나 입시 제도 등 우리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직업이나 학벌 같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 경쟁에서 도태된 실패자(소위 말하는 ‘루저’)의 불만 토로로 비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카이스트는 2021년 국내 최초로 대학 차원에서 실패를 연구하는 정식 기구 ‘실패연구소’를 설립했다. 실패연구소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카이스트 학생들을 포함해 학교 안팎으로 세대와 분야를 넘나들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 ‘실패에서 배우는 법’을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를 책 <실패 빼앗는 사회>에 담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거나 ‘실패는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라는 말이 학생들에겐 정작 와 닿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카이스트 구성원에게 받은 의견을 살펴보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문화와 높은 성과 압박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우리 사회는 성공의 순간에 주목하는 것에 비해 그 과정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담보다 성공담이 훨씬 자주 회자된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평균치에 대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데 있다. ‘다른 사람들은 승승장구하는데, 나만 실패하며 뒤처지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도전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실패를 포상하거나 격려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의 엑스 디벨롭먼트(전 구글 엑스)는 실패한 프로젝트의 팀 구성원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보너스와 다음 프로젝트를 구상할 휴가를 줘 화제가 됐다. 이 회사는 실패한 프로젝트를 모아둔 저장소를 별도로 운영할 정도로 실패에 진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기업 혼다는 한 해 동안 가장 실패한 연구원에게 ‘올해의 실패왕’을 수여하며 약 1000만 원에 달하는 상금을 준다. 핀란드 게임회사 슈퍼셀은 직원들이 프로젝트 실패했을 때 실패에서 배운 게 있으니 축하하자는 의미로 샴페인 파티를 연다고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마음껏 도전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반면, 지난해 10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실시한 ‘도전과 실패에 관한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2%가 ‘한국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라고 응답했다. ‘한국 사회는 한 번 실패하면 낙오자로 인식된다’라는 데 대해서는 58.2%가 동의했다.

이 책은 누구나 인정하는 가성비 높은 안정적 성공만 추구하는 사회에서 실패할 시간과 자리를 보장할 수 있는 사회 전반의 변화를 촉구한다. 실패가 성공을 위한 도전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믿음이 축적돼야 ‘실패 빼앗는 사회’에서 ‘실패 권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안혜정·조성호·이광형 지음/위즈덤하우스/304쪽/1만 8500원.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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