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비정상의 연속… 대한민국 희망 있나
강희경 정치부장
당당히 탄핵 맞서겠다던 윤 대통령
헌법재판소 보낸 서류도 받지 않아
탄핵 찬성 당대표 몰아낸 국민의힘
친윤 중진 비대위원장 추대 가능성
대권 눈앞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변호인 선임 않는 등 재판 지연 급급
최근 계엄과 이후 지속되는 어지러운 탄핵 정국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다시 발견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의 생뚱맞은 계엄과 해제 이후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들은 거의 죄다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뿐이다.
여당은 계엄 해제와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당대표를 몰아낸 후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여전히 싸우며 아직 비상대책위원장도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당 내 탄핵 반대파가 많은 상황에서 친윤(친윤석열)계 원내 중진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탄핵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과 어긋난 행보다. 계엄과 탄핵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친윤계 중진이 원내대표에 이어 비대위원장까지 차지하면 ‘계엄 옹호당’ 이미지를 벗을 수 없을 것이란 비판이 당내에서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늦추기 위한 꼼수 행보도 논란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담화에서 “비상계엄 선포는 합헌적인 통치행위”이며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서겠다”고 했지만 그의 공언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 중인 공조수사본부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앞서 공조본은 지난 16일 윤 대통령에 첫 소환 통보를 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비서실과 경호처 모두 출석 요구서 수령은 자신들의 업무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편을 통해 전달된 출석요구서도 ‘수취 거부’로 반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공조수사본부는 지난 20일 윤 대통령에게 오는 25일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석해 조사받으라는 내용의 2차 소환요구서를 보냈다. 윤 대통령이 2차 소환에도 응하지 않으면 공수처가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에 넘겨진 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가 보낸 관련 서류를 받고 있지 않고 있다. 헌재는 지난 16일부터 탄핵심판 접수 통지서 등 각종 서류를 윤 대통령 측에 우편, 인편, 전자 송달 등 여러 방법으로 보내려고 시도하고 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관저에 우편으로 보낸 서류는 ‘경호처 수취 거절’로, 대통령실로 보낸 서류는 ‘수취인 부재’로 배달되지 않았다. 헌재는 여러 방안을 검토 중으로, 27일로 예정된 윤 대통령 탄핵 사건의 첫 변론준비기일을 일정 변경 없이 진행한다는 방침이지만, 윤 대통령이 그때까지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거나 불출석할 경우 공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임기가 끝나는 내년 4월 18일 이후로 탄핵 선고를 늦추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두 사람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진보 성향 법관이다.
‘침대 재판’은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따라붙는 꼬리표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으로 지난달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 것은 물론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다. 이 대표는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했지만, 아직 2심 변호인은 선임하지 않고 있다. 2심 개시를 위한 ‘소송기록 접수통지서’ 수령을 두고도 우편을 통한 자택 송달이 잇따라 불발됐다가 지난 18일에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최근 ‘불법 대북송금’ 재판에서 법관 기피 신청을 했다. 법관 기피를 신청하면 통상 재판이 2~3개월 늦어진다. 이 대표는 지난 7월 수원지법에서 재판하는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옮겨 달라고도 신청했다. 이 사건에서 이 대표는 지난 6월 기소됐지만, 공판준비기일만 네 차례 열렸을 뿐 본격 재판은 시작도 하지 못 했다.
이 대표의 지연 전략은 조기 대선 가시화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탄핵 사건은 헌재 사건 접수 후 180일 이내에 선고해야 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리는 91일이 걸렸다. 윤 대통령이 파면되면 60일 이내에 차기 대선이 열려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을 기준으로 보면 내년 5월 대선이 치러진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강조한 ‘6·3·3 원칙’(1심 6개월, 2·3심 3개월)에 따르면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확정 판결은 내년 5월까지 나와야 한다. 만약 1심 판결대로 확정되면, 이 대표는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대선에 나설 수 없다. 이 대표는 재판을 지연시키며 대권을 잡으려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윤 대통령은 고의적인 심판·수사 지연 의혹을 불식할 수 있도록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이 대표도 재판을 늦춰 조기 대선을 치르려는 꼼수를 더 보이지 말아야 한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