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공장·어선 즐비했던 항구, 민간 손에 관광 명소로 ‘재탄생’ [북항을 '글로벌 핫플'로]
3. 무역항 대변신, 싱가포르
물류창고·선착장 포진 악취 진동
주변 정화 상업·주거·유흥지 조성
역사성 살려 기존 건물과 조화 모색
관 주도 탈피·민간 운영 효율 유도
개발 단계부터 아이디어 등 공유
계획·전문성·협업·균형 정책 강점
싱가포르 도심을 가로지르는 싱가포르강 바로 옆에는 ‘클락 키’ 지역이 있다. 싱가포르 두 번째 총독 클락(Clarke)과 부두를 뜻하는 키(Quay)를 붙인 이름으로 옛 통조림 공장과 어선이 즐비했던 곳이다. 하지만 공동취재단이 지난 6월 28일 이곳을 방문했을 때 물류 창고나 선착장은 온데간데없고 그야말로 세계적인 수변 관광지의 면모를 뽐내고 있었다.
해가 지고 오후 8시를 넘어가자 폭 50m의 싱가포르강 양쪽에 들어선 식당과 술집에서 형형색색의 불빛이 사방을 비췄다. 전 세계에서 몰린 관광객들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눴고, 반대편 수로에 조성된 계단에도 자리에 앉은 시민들로 가득찼다.
천천히 강을 유람하는 크루즈선에 올라탄 이들은 싱가포르강의 야경을 담으려 사진 찍기에 여념 없었다.
■오염된 강이 수변 관광지로
오늘날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금융과 무역 중심지로 꼽힌다. 싱가포르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주요 해상 무역로에 자리한 덕분에 세계 최대 환적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끊임없는 수변 지역을 재개발을 통해 싱가포르는 관광 도시로도 각광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면적이 721.5㎢에 불과해 부산(770.1㎢)보다 좁지만 올해 관광객은 16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싱가포르 관광객이 즐겨찾는 장소는 싱가포르강을 따라 조성된 클락 키와 보트 키(Boat Quey), 로버트슨 키(Robertson Quey) 지역이다. 이곳들은 1960년대까지 각종 향신료나 생선 통조림을 만들고 보관했던 공장들로 빼곡했다. 고기잡이도 이뤄져 계류장에는 어선도 넘쳐났다. 하지만 갈수록 사람이 몰리자 강의 수질은 오염됐고 악취 문제도 심각해졌다.
이에 싱가포르 정부는 1974년 도시재개발청(URA)을 만든 뒤 1977년부터 싱가포르강에 있는 선착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주변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빈 자리는 상업, 주거, 유흥지구로 재개발했다. 강변 양쪽 둑을 따라 6km 길이의 산책로도 조성했다.
동시에 역사적인 건물은 가급적 외관을 보존했고, 새 건물을 세우더라도 기존 건물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현재 싱가포르강 지역은 옛스런 과거 건물과 현대적인 상업 시설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관광 명소로 거듭날 수 있었다.
■민간 NGO가 운영 전담
클락 키와 보트 키, 로버트슨 키를 운영하는 주체는 ‘SRO(Singapore River One)’라는 이름의 비영리단체(NGO)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개발할 면적은 부족하고 인구 밀집은 높아 철저한 공공 주도의 개발 사례가 많다. 하지만 싱가포르강 지역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운영은 전적으로 민간 기구에 위탁하는 결정을 내렸다.
2012년 설립된 SRO는 싱가포르강 주변을 유지·관리하는 것은 물론, 해당 지역에 투자 유치를 끌어내 개발 사업을 직접 수행한다. 세입자 관리도 SRO의 몫이다. SRO에 따르면 싱가포르강 지역에 입점한 가게만 500여 개에 달한다. SRO는 이들에게 면적에 따라 2만 5000~5만 싱가포르 달러(약 257만~514만 원)의 월 임대료를 받고, 싱가포르강 지역을 관리하고 개발하는 데 재투자한다.
싱가포르강을 무대로 펼쳐지는 최대 규모의 축제인 ‘싱가포르 리버 페스티벌(SRF)’도 SRO 손에서 이뤄진다. 매년 9~11월 사이 축제 기간 동안 싱가포르강변에서 댄스 공연, 라이브 음악, 조명 쇼 등 다양한 예술 행사가 열린다. SRO는 매년 인근 주민에게 설문 조사를 받아 공공 벤치 설치를 확대하는 등 주민 의견 반영에도 힘쓰고 있다.
SRO 미셸 고 상무이사는 “정부는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민간이 효율적이고 독립적으로 특정 사업을 운영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것이 싱가포르 정부가 민간-공공 파트너십을 선호하는 이유”라면서 “의사결정이 아래에서 위로, 즉 ‘보텀업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해 관계자와 주민들이 더욱 주인 의식을 갖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1만 주민 손으로 만든 시설
아예 개발 단계부터 민간에서 이뤄진 사례도 있다. 바로 싱가포르 탬피니스 지역에 있는 ‘아워 탬피니스 허브(OTH)’다. OTH는 총 연면적 23만 2000㎡로 110개 이상의 상점과 24시간 운영하는 슈퍼마켓, 5000석 규모의 스포츠 경기장과 지역 도서관 등이 들어선 복합 문화 시설이다. 2017년 8월 공식 오픈한 OTH는 현재 일 평균 5만 명의 방문객이 찾고 있다.
OTH는 싱가포르 주민 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싱가포르인민협회(PA)’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어떤 시설을 만들지 구상은 주민들 손에 이뤄졌다. PA는 2012년부터 탬피니스 주민 1만 5000여 명과 1900명의 자원봉사자에게 아이디어를 받았으며 실제 이를 반영했다. OTH 관
계자는 “12개월 동안 15번의 포커스 그룹 토론을 진행했으며 25만 명 주민에게 편지를 보냈다. OTH는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었고, 실제 주민들이 필요한 경험을 제공하여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취재에 동행한 국립부경대 HK+사업단 김성민 교수는 “싱가포르 도시 정책의 강점은 ‘계획’ ‘전문성’ ‘협업’ ‘균형’으로 압축된다. 10년 단위 장기계획인 ‘콘셉트 플랜’을 세우고 이를 위해 여러 기관들 간 긴밀하고 체계적인 협업이 이뤄진다. 동시에 시민 참여를 포함한 민관 협력 역시 매우 활성화돼있는 점이 놀랍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글·사진=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