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칼럼] 대선,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들
논설위원
제20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15일 시작됐다. 워낙에 초접전 양상이 펼쳐져 누가 가장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될지 전혀 예상이 안 된다.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는 대선 후보 지지율을 보노라면 ‘정치는 생물’이란 말이 가히 실감 난다. 한편으론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이끌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데 막판까지 이래도 되나 싶다. 경제·안보·복지 등 국정 비전은 물론이고, 시대정신이라 할 만한 논쟁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서 유감이다.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에릭 와이너는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을 이야기하면서 “명백해 보이는 문제일수록 더 시급하게 물어야 한다”고 했다. 와이너의 지적처럼 ‘나는 궁금하다’는 이 짧은 두 마디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어쩌면 우리의 선택과 그 이유가 더 명료해질지 모르겠다.
비전·시대정신 보이지 않아 유감
남은 선거 기간에라도 바뀌어야
윤 보복 수사·검찰 강화 철회하고
이 실용주의와 포퓰리즘은 달라야
유권자 선명한 시야 갖지 않으면
이성 대신 괴물 눈뜨는 사회 맞아
이 시점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간 단일화 성사 여부다. 중요한 것은 ‘정권교체’ 외에는 어떤 대의와 명분도 보이지 않는 단일화로는 시너지는커녕 유권자로부터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명심하는 일이다. 주권자라면 냉정하게 심판해야 한다.
단일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하자면 안 후보는 ‘철수 정치’의 오명을 이번엔 벗을 것인가 궁금하다. 안 후보는 “2012년 대선에는 제가 양보했다. 이때 한 번”이라면서 “나머지 2017년 대선, 2013년 총선 재보궐 선거, 2020년 총선, 2014년 2018년 선거에서 완주를 안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11년 차 정치인 안 후보의 꿈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이것도 궁금하다. “집권하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 청산 수사를 하겠다”는 윤 후보의 발언은 진심이었을까. 비리가 있으면 당연히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야겠지만, 집권도 하기 전에 검찰권을 옹호하고 사실상 보복 수사를 공언하는 진짜 이유 말이다. 위험천만한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를 국민들이 용납할 거라고 믿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당장 철회해야 한다.
윤 후보의 ‘구둣발 사진 논란’에선 두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굳이 국가 지도자 입장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구두를 신은 채 맞은편 좌석 위에 두 다리를 쭉 뻗은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몸에 밴 특권의식’ 같은 지적을 떠나서 윤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태도는 문제가 아닐까. 더 정확히 말하면, 윤 후보가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을 때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행여 의식했더라도 감히 말하지 못하는 소통 구조는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식 실용주의’도 궁금하다. 그는 진짜 실용주의자인가. 중도확장의 필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고, 실용주의를 폄훼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 지도자라면 뚜렷한 철학과 비전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일관성이 전제돼야 실용주의도 빛을 발하는 법인데, 그 기저는 잘 지켜지고 있는가 싶어서다. 그러니까 선거를 앞두고 이 후보가 내세우는 실용 노선이, 이전의 정책이나 발언을 뒤집는 일이 ‘기회주의자’나 ‘포퓰리스트’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 주지 않으면 국정 철학도 없이 여론만 뒤쫓는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진보 정당의 존재감이 그 어느 때보다 약한 이번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얼마만큼 반전의 기회를 이뤄 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 거대 양당 중심의 대선 구도에서 진보 정치의 위기는 결국 정의당이나 심 후보 자신이 초래했을 터, 그 가치와 역동성을 살려 내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이 땅의 노동자나 약자, 소수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정당에 목마르다.
궁극적으로 궁금한 것은 유권자 속내다. 그것도 부울경 주민이다. 그들의 소중한 한 표는 어떤 기준으로 행사될 것인가 정말 궁금하다. 물론 지역주의는 넘어서야 한다. 그렇다고 지역 균형발전·자치분권 문제까지 모른 척해선 안 된다. 공교롭게 공식 선거운동 첫날을 맞아 대선 후보들은 ‘스윙스테이트(경합지)’ 부산으로 몰려와 지지를 호소했다. 아쉽게도 지금의 공약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다시, 소크라테스 이야기로 돌아온다. 와이너는 “우리에겐 늘 지혜가 필요하지만, 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지혜가 다르다”면서 “열다섯 살에게 중요한 ‘어떻게’ 질문과 서른다섯 살, 또는 일흔다섯 살에게 중요한 질문은 같지 않다”고 했다. 대통령 후보를 향한 질문도 절대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가,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대통령은 어떤 사람일까를 물어야 한다. 행여 국가 지도자가 될 사람이 잘못된 도수의 안경을 쓰고 있거나 심지어 자신에게 안 맞는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그야말로 낭패다.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래야만 선명한 시야를 가질 수 있다. 고야의 연작 판화집 제목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뜬다’처럼 되지 않으려면 더더욱.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