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개금 아파트 화재 때와 판박이, 어떻게 이런 일이…"
기장 아파트 화재 참변 현장
정전 피해 이모 집 갔다가 귀가
부모가 집 비운 지 30분 만에
어린 두 자매 믿기지 않는 죽음
주민들 "아이들 같은 색 옷 비통"
부산시 ‘긴급 돌봄’ 확대 방침
“아이들이 옮겨질 때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니 더 슬펐습니다.”
3일 오전 8시께 만난 부산 기장군 기장읍의 모 아파트 주민들은 같은 아파트에 살던 8살, 6살 자매가 화재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불이 난 아파트 주변에선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났다. 아파트 밑에 모인 주민 20여 명은 가던 길을 멈춘 채 한숨을 쉬며 불이 난 집을 올려다 봤다.
안타까운 마음에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 발결음을 옮기며 출근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주민 김 모(50) 씨는 “얼마 전 개금동 화재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는데, 약 일주일 만에 비슷한 참사가 우리 아파트에도 발생해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8살, 6살 자매가 숨진 부산 기장군 아파트 화재는 지난 2일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지난달 24일 부산진구 개금동 화재로 10살, 7살 자매가 세상을 떠난 지 8일 만이다. 당시 부산시와 소방청은 당시 긴급 돌봄 체계 현황을 파악해 보완하고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아파트에 대해 긴급 안전 점검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참사는 재발했다.
3일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일 오후 10시 58분께 부산 기장군 기장읍의 아파트 6층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아파트 맞은편 빌라 주민과 경비원의 신고를 받은 일광소방서 선착대는 화재 현장과 4km 떨어진 곳에서 출동해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14분 만에 현관문을 강제로 열었다.
출동한 소방관은 문을 연 뒤 1분 만에 현관 앞 중문 근처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6세 유치원생 동생을 먼저 발견했다. 다시 2분 뒤 발코니 근처에서 8세 초등학생 언니를 발견했다. 거실 바닥에는 층간 소음 방지 매트 등이 깔려 있었다. 동생은 오후 11시 19분, 언니는 오후 11시 28분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자매는 이미 숨진 후였다.
합동 감식 결과 화재는 거실에 놓인 스탠드형 에어컨 주변에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 원인은 에어컨 전원이 연결된 멀티탭 전선 단락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화재 발생 당시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정확한 원인은 에어컨과 전선 등 추가 잔해물에 대해 국과수의 정밀 감식을 받은 후 판단할 예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화재 발생 전 아이들은 부모가 운영하던 치킨집에 함께 있었다. 그러다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2차례 정전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정전으로 아이들이 제때 씻지 못할 것을 우려해 가게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인근에 있는 아이들의 이모 집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어머니는 오후 10시 22분께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집에 두고 홀로 집을 나섰다. 아버지는 이날 오후 9시 30분께 가게 운영을 마친 후 9시 48분께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 외출했다. 참사는 부모가 모두 집을 비우게 된 지 30분 만에 벌어졌다. 이들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나 구청의 생계 지원 대상자 등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불이 난 아파트에는 화재 경보가 울리는 ‘자동화재탐지기’와 옥내 소화전만 설치돼 있었다. 2003년 건축허가를 받을 당시에는 16층 이상만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어서 13층짜리 이 아파트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부산시는 화재 이후 긴급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스프링클러 미설치 아파트를 전수조사하고 소방본부와 TF도 마련할 예정이다. 기장군도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공동주택에 화재예방 안내문을 게시하고 사업장, 공공시설물, 공동주택 등에 대한 특별 안전 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군은 이번 참사로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가 휴업하는 경우 긴급 생계 지원 신청을 받아 주거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진구 개금동 아파트 화재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고가 또 터졌다”며 이어 “아이들만 남겨두고 나가는 일이 없도록 돌봄 지원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