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청 ‘UN남구’ 추진 무산… 8000만원 예산 ‘불용 수순’
UN기념공원 상징성 내세워 명칭 변경 추진
문체부·행안부·외교부 부적절 판단에 사업 제동
구의회 “가능성 불확실한 사업 졸속 추진” 비판
부산 남구청이 추진하던 ‘유엔(UN)남구’ 명칭 변경이 중앙정부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구청은 수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명칭 변경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에 나섰지만, 명칭 사용이 부적절하다는 정부 부처 판단이 내려지며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구청이 신중한 검토 없이 밀어붙인 사업으로 결국 예산까지 반납할 처지에 놓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3일 부산 남구청에 따르면 남구는 지난 5월 7일 제1차 추가경정예산에 ‘구 명칭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위해 8000만 원 편성해 구의회 본회의 의결을 받았다. UN기념공원이 위치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고 세계적인 도시 브랜드를 구축하겠다며 구 명칭을 ‘UN남구’로 변경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산이 확정된 이후인 지난달, 중앙 부처로부터 UN남구 사용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잇따라 회신됐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행정안전부, 외교부는 구 명칭에 ‘UN’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우려와 반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 관계자는 “국어기본법 취지에 맞지 않고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다”며 “공공기관 등이 국민 공문서를 작성할 때는 국민들이 알기 쉽게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명칭은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담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이 알려지자 남구의회에서는 애초 명칭 사용 가능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구청이 무리하게 예산을 편성해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남구의회 허미향 의원은 “구 명칭 변경은 주민 의견 수렴과 공감대 형성이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한다”며 “아무리 좋은 명칭이라도 구민 동의가 없이 추진된다면 행정 독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명칭 변경의 실효성과 행정 비용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남구의회 백석민 의원은 “명칭 변경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예산부터 먼저 편성하고, 안 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접근은 무책임하다”며 “구 명칭이 바뀌면 주소지, 행정시스템 정비 등 관련 30억 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안인 만큼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구는 무리한 추진은 아니었으며 용역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었다는 설명이다. 오은택 남구청장은 “주민을 배제한 결정은 아니었으며 구 명칭 변경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통해 여론조사 등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었다”며 “중앙 부처의 의견에 따라 UN남구 명칭을 당장 사용하는 것은 어렵게 됐지만, 향후 시의적절한 시점에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해 재논의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