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산불 이재민 3명 중 1명 ‘PTSD 고위험군’…복합 재난 인식하고 대안 마련해야
산불 피해 주민 400명 조사
우울 고위험군도 24% 달해
2일 국립보건연구원 포럼 개최
“이재민 회복 중장기 대응 필요”
2025년 3월 24일 경북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에서 강풍을 타고 번진 산불이 민가를 덮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발생한 경북 산불 피해 이재민 3명 중 1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군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북 산불 피해 주민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PTSD 고위험군은 34.25%에 달했고, 우울 고위험군도 24.0%나 됐다.
국립보건연구원과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지난 2일 개최한 ‘산불 피해 이재민의 장·단기 건강영향조사 및 대응 체계 연구 포럼’에서 의정부을지대병원 오상훈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포럼은 서울대병원 암연구소에서 열렸으며, 온라인으로도 생중계됐다.
작년 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화한 산불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5개 시군으로 번졌다. 149시간 만에 주불 진화가 완료됐고, 30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오 교수는 지난 2월 안동시와 의성군에 거주하는 산불 피해 주민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통해 우울, 불안, PTSD 등을 평가했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기후 변화로 산불의 빈도, 규모, 지속 시간이 늘면서 물리적 손실을 넘어 집단적 정신건강 위기로 확장되고 있다”라며 “생명 위협이나 강제 대피, 주거 상실은 외상성 사건으로 작용할 수 있고, 이에 따른 PTSD, 우울 등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재민을 연령별로 나눠 보면 PTSD 양성 비율은 65세 미만에서 42.2%로 가장 높았고, 65∼74세 미만은 31.1%, 75세 이상은 29.8%에 달했다. 살던 집까지 피해를 본 이재민의 PTSD 양성 비율은 42.1%로 그렇지 않은 이재민의 28.8%보다 더 높았다.
이날 포럼에서는 2019년 고성 산불 피해 이재민의 트라우마 사례도 소개됐다. 속초시보건소 박중현 소장은 산불로 집이 전소된 이후 봄에 바람이 강하게 불면 당시 기억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지고, 다른 지역의 화재 소식에 불안을 느끼거나 집을 잃은 상실감에 심한 우울감을 느끼는 등 시간이 지나서도 피해 지역민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농촌의 경우 산불로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면 개인의 회복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포럼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산불 이재민의 건강 회복을 위해 재난 직후부터 중장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산불과 같은 재난에 대한 대비·관리·회복의 전주기를 포함하는 매뉴얼 마련, 통합적 돌봄과 지원체계 필요, 장기적으로 이재민 건강관리와 회복을 지원할 재단 설립 등이 다양하게 논의됐다.
한림의대 김동현 교수는 “지역사회에 재난 대응 기본 역량이 갖춰져 있어야 하며, 중앙과 지방 정부가 역량 강화를 위해 범부처·범사회적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연세원주의대 고상백 교수는 “산불은 자연재난이 아닌 국민 건강과 공중보건의 위기를 초래하는 복합재난으로 인식해야 한다”라며 “앞으로 산불의 빈도 수도 많아지고 피해도 커질 것을 염두에 두고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