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드보르자크, 날아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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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안토닌 드보르자크. 위키미디어 안토닌 드보르자크. 위키미디어

122년 전인 1904년 5월 1일, 체코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가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드보르자크는 넬라호제베스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도축업자였고 아들에게 가업을 잇고 싶어 했다. 실제로 드보르자크는 도축업 시험까지 통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마을을 떠나 수도인 프라하로 와서 오르간 학교에 입학했는데, 이후 프라하 국민극장 부속 관현악단에 들어가 비올라를 연주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1875년에 국비 장학생이 되어 한숨을 돌리게 되었는데, 그때 심사위원이던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가 드보르자크에게 브람스를 찾아가 보라고 조언했다. 이듬해 빈으로 찾아간 드보르자크는 브람스를 만나서 앞으로의 음악 활동에 관해 상담했다.

브람스는 이 시골 청년의 순수한 열정과 재능을 파악하고선 여러 곳에 소개했다. 특히 당시 최고의 출판사 중 하나인 짐로크 출판사를 연결해 주며 “음악가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것들을 드보르자크는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그를 소개했다. 이어 그가 무척 가난하다는 점을 특별히 참작해 달라며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점까지 보태서 설명했다.

짐로크 출판사는 반신반의하면서 드보르자크에게 브람스의 히트작인 ‘헝가리 무곡’과 비슷한 곡을 써보라고 권했다. 이에 드보르자크는 슬라브 지역의 정서를 포착하여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을 썼는데 이것이 작품 46의 ‘슬라브 무곡’ 여덟 곡이다. 슬라브 무곡은 체코의 민속적 리듬을 살리면서 강한 대중성을 갖고 있었다. 형식은 친숙하지만, 내용은 신선해서 아마추어부터 전문 연주자들에까지 폭넓은 교재로 활용되었다.

곡을 들은 ‘나치오날차이퉁’지의 평론가 루이스 엘레르트는 기쁨에 겨워 말했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민요 가락 조각을 얼기설기 이어 붙인 작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벽한 경지에 다다른 예술이다. 길거리에서 보석을 주운 사람은 그걸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바로 그러한 신고를 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드보르자크 슬라브 무곡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출판사가 후편을 내달라고 요청해 1886년에 두 번째 슬라브 무곡집인 작품 72의 여덟 곡을 더 작곡했는데, 두 번째 무곡집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사이에 작곡한 실내악이나 종교음악도 꾸준히 팔렸다. 작곡 생활을 이어가던 끝에 드보르자크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프라하 음악원에서 작곡가 교수 직위도 받게 되었다. 무명의 작곡가는 이렇게 클래식 역사에 우뚝 서게 되었다.

드보르자크-슬라브무곡 드보르자크-슬라브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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