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한 달 재판소원 심리 통과·법왜곡죄 송치 ‘0건’
재판소원,본안 심리 회부 사건 전무
청구 사유 해당하지 않아 모두 각하
법왜곡죄, 송치 사례 한 건도 없어
사법개혁 부작용 가시화, 손질 필요
지난달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비치된 재판소원 관련 안내문. 연합뉴스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불복할 수 있는 ‘재판소원’과 법관·검사·경찰이 고의로 법을 왜곡해 적용한 경우 처벌하는 ‘법왜곡죄’가 시행 한 달이 지났다. 사법 통제 강화와 기본권 구제 확대라는 명분으로 출발했지만, 재판소원은 단 한 건도 본안 심리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왜곡죄 역시 무분별한 고소·고발로 이어지며 법관 위축 우려를 키우고 있다.
12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재판소원 시행 이후 전날(11일)까지 접수된 사건은 384건이다. 이 추세라면 최소 연간 5000건 안팎에 이를 전망으로, 지난해 접수된 기존 헌법소원(3066건)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우려했던 사건 폭증이 현실화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본안 심리에 회부된 사건은 전무하다. 헌재는 이달 7일까지 세 차례 사전심사에서 194건을 모두 각하했다. 각하 사유 대부분은 ‘청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명백한 경우’였다.
헌재법상 청구 사유는 확정된 재판이 △헌재 결정에 반하거나 △헌법·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헌법·법률을 명백히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등이다. 사실상 기본권 침해가 명백해야 사전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는 의미로, 법조계에서는 “사전심사 무더기 각하는 예상됐던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단순한 재판 결과 불복이나 사실 인정의 타당성을 다투는 청구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준을 분명히 했다. 재판소원이 사실상의 ‘4심제’로 작동해 사법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해 초반부터 엄격한 선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제도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아 기본권 구제라는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게다가 재판 기록 송부 문제나 재판소원 인용 시 확정된 원재판의 효력을 어떻게 처리할지 등 후속 절차에 대한 설계도 미비해 실무적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같은 날 시행된 법왜곡죄 역시 부작용이 가시화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시행 한 달 만인 지난 11일 기준 전국 경찰에 접수된 법왜곡죄 사건은 44건, 피의자는 118명이다. 하루 평균 4명꼴이다. 시행 첫날부터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해 주요 판검사들이 고발 대상에 오르며 법관이 집중적인 타깃이 되고 있다.
다만 실제 처벌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재판 과정의 법률 해석과 사실 인정은 법관의 재량 영역이 넓어 ‘고의 왜곡’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 역시 명백성이 떨어지는 사건은 불송치로 정리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접수된 법왜곡죄 사건 중 송치된 사례는 11일 기준 단 한 건도 없다.
문제는 고소·고발 자체가 재판을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 당사자들의 고발이 남발하면, 법관들이 방어적이고 보신주의적인 판단에 치중하거나 형사재판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이에 법원행정처는 ‘형사재판 보호·지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변호인 선임 지원, 매뉴얼 마련 등 대응책 모색에 나섰다. 6개월가량 활동한 후 올해 안에 연구 결과를 낸다는 계획이다.
결국 사법 통제와 권리 구제라는 개혁의 취지와 달리, 시행 한 달 만에 부작용이 먼저 부각되는 형국이다. 오는 13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이른바 ‘사법 3법’을 둘러싼 재판 위축 우려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도입 명분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부작용을 최소화할 정교한 후속 설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