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거꾸로 간다] 초고령사회, 연명치료를 묻다
이재정 부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며칠 전, 어머니가 무심코 툭 던지듯 말씀하셨다. “나는 나중에 산소호흡기 끼고 그런 거 안 할 거다.” 지나가는 일상적인 대화 속 짧은 한마디였지만, 딸인 나에게는 당신의 생애 마지막 순간 무의미한 기계적 연장을 거부하겠다는 단호하고도 명확한 의사 전달이었다. 어머니의 그 덤덤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오랫동안 가슴 한편에 묻어뒀던, 묵직하고 아픈 기억 하나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시어머니가 중환자실에 누워계실 때의 일이다. 당시 의료진은 더 이상 회복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고, 우리 가족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생사의 기로를 결정해야 하는 그 서늘한 질문 앞에서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선뜻 입을 떼지 못했다.
치료를 중단한다는 것은 마치 우리 손으로 어머니를 죽음으로 등 떠미는 것 같은 끔찍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반대로, 병을 고칠 약도, 고통을 줄일 더 높은 강도의 진통제조차 없는 상황에서 그저 기계에 의존해 생물학적 숨만 쉬게 하며, 하루 한 번 짧은 면회 시간 동안만 얼굴을 보는 것이 과연 어머니를 위한 일인지도 알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아주 작은 기적의 불씨라도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 그리고 더 이상의 고통은 무의미하다는 절망 사이에서 가족들은 모두 서로의 시선을 회피한 채 침묵할 뿐이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본격적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늘어난 수명만큼 노년기의 돌봄과 생애 말기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다. 우리 가족이 병원 복도에서 겪었던 딜레마를 마주해야 할 가족들이 무수히 많아질 것이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생명 유지 장치를 통한 기계적인 수명 연장은 가능해졌다. 다만 그것이 곧 ‘존엄한 삶의 연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우리 삶의 질과 존엄을 위해 반드시 공론화돼야 할 화두다. 기계음에 의존해 혹시 모를 기적 때문에 고통의 시간을 늘릴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순리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는 환자 본인이 맑은 정신으로 정확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때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이 자신의 생애 말기 돌봄과 연명치료 여부를 미리 고민하고, 제 뜻을 가족에게 명확히 밝혀두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를 바란다.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단지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권리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겪어야 할 막막한 슬픔과 죄책감을 덜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따뜻한 배려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