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외투자 유치와 지역차등 전기요금제
박성호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
박성호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
지난해 12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투자유치 설명회가 열렸다. 규슈경제연합회 현지 관계자는 인근 구마모토에 둥지를 튼 대만 반도체 거인 TSMC의 투자 사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권역별로 7개 전력회사가 운영되고 있으며, 지역별로 차등화된 요금 체계를 갖추고 있다. TSMC가 기존 대만 본사 외에 추가로 일본 구마모토에 공장을 건설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전기요금 체계가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구마모토는 규슈전력 관할지역으로, 후쿠시마 원전 피해를 입은 도쿄전력 관할구역보다 전기료가 싸고, 원자력·지열 등 안정적인 전력공급체계를 갖추고 있다. 에너지 정책이 기업의 투자 결정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발전소와의 거리나 송전 비용을 무시한 채 전국 단일 요금제를 유지해 왔다.
그 결과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의 불일치에서 오는 막대한 송전 손실과 사회적 비용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 생산지 근처의 기업이 저렴한 전기를 쓰는 ‘지산지소’형 구조로의 전환은 지역 균형 발전과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열쇠다.
대한민국의 산업 심장부인 부산·울산·경남은 이 변화를 주도할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고리·새울 원전 단지를 중심으로 한 국내 최대 전력 생산 기반은 동남권이 가진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다.
여기에 최근 부울경은 기존 원전 중심의 구조를 넘어 소형모듈원자로(SMR) 제조 생태계와 다대포·울산 앞바다의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그리고 이를 잇는 수소 배관망 인프라까지 구축하며 차세대 에너지 믹스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
부울경의 제조 기업들은 에너지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도 글로벌 탄소 규제에 완벽히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된다. 이는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넘어, 지역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저탄소·고효율 스마트 산단’으로 탈바꿈시키는 핵심 동력이다.
또한 부산과 울산이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이제 지역 내에서 생산된 전력을 한전을 거치지 않고 발전사업자와 기업이 직접 거래(PPA)할 수 있는 실무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는 기업들에 실질적인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이나 무탄소 에너지 100% 사용(CF100) 달성이 시급한 글로벌 IT·첨단 제조 기업들에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제공한다.
에너지 혁신의 중심에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이 있다. 부산신항의 글로벌 물류 경쟁력에 진해신항(2040년)과 가덕도신공항(2035년)이라는 ‘트라이포트(Tri-Port)’ 인프라가 완성되면, 전 세계 물류와 산업의 허브가 될 전망이다.
지역차등 요금제라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더해진다면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된다. 전력 소모가 많은 데이터센터, 반도체, 정밀 기계 등 국내외 첨단 기업들이 동남권으로 발길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투자유치 현장에서 만나는 기업인들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예측 가능한 에너지 비용이 기업의 생존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차등 요금제가 조속히 안착돼 입주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개선된다면,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지역 산업의 고도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흐름을 되돌릴 가장 강력한 동력 역시 에너지 기반의 산업 경쟁력에서 나온다.
에너지는 이제 복지를 넘어 경제이며 국가 생존의 문제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을 필두로 한 동남권의 에너지 분권 실현은 수도권 일극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엔진을 가동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 지역차등 요금제의 조기 정착과 에너지 신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