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철의 사리 분별] 잔혹한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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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죄의식 없는 야만 회귀 시도 일상화
국제 사회 곳곳 힘의 논리 판치지만
"결국 이해되고 변호될 것" 궤변 만연
비상계엄 불가피론 오만함의 방증
반지성 미화 절대 용납해선 안 돼
준엄한 판결, 악순환 끊는 이정표로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 것이다.’ 세계 최초 공산국가 소비에트 연방 수립을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의 묘비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1924년 그가 사망한 뒤 100여 년이 흘렀다. 인류는 그가 언급한 미래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체제에 사는가를 떠나서 당시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한가. 자유와 평등, 다양성 개념이 확장되고 기대 수명과 교육 기회가 늘어난 것은 물론 산업화로 평균적 경제 여건이 개선된 점 등을 감안하더라도 선뜻 행복하다고 단언키 어렵다.


인류의 행복 체감도가 여전히 낮은 근본 원인은 공동체와 리더들의 궁극적인 작동 방식이 과거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레닌의 묘비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우리가 처했던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잔혹한 일들은 결국 이해되고 변호될 것이다.’ 무장봉기로 기존 체제를 뒤엎은 볼셰비키 혁명과 그 이후 소련 사회주의 정권 유지 과정에서 수많은 숙청 등 피바람이 몰아쳤다. 결국 레닌의 묘비 글귀는 과거 잔혹한 일들은 후인들의 행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레닌 묘비명을 통해 현재를 반추해 보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등 인류가 고안한 각종 제도와 체제 간의 우월성 여부를 따지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잔혹함의 원인에 대한 것이다. 인류 역사는 전쟁과 혁명, 작용과 반작용, 도전과 응징 등 힘의 논리에 근거한 끔찍한 야만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인류는 그 참담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법과 관습 등 다양한 규율을 토대로 문명을 일구고 지성의 힘을 길러왔다. 엄청난 비극인 제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다원주의, 평등, 인도주의,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정립하는 귀중한 성과도 이뤄냈다.

그러나 야만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인간 내면에 도사린 권력과 욕망을 향한 이기적 본능은 언제나 틀을 깨고 튀어나오려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지금도 야만으로 회귀하려는 죄의식 없는 시도들을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특히 그 시도들의 기저엔 ‘처한 상황을 감안할 때 기존 질서와 약속을 파괴하는 잔혹한 행동은 불가피하다’는 오만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공공연한 오만함을 보면서 인류가 지성적 성숙 단계에 접어들기엔 근대 문명화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현재 국제적으로는 미국 우선주의와 돈로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식적 국제질서 파괴 행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임박한 것으로 예측되는 이란과 미국과의 전면전 위기, 가자지구 사태, 무역전쟁, 일본의 전쟁 가능 국가 추진과 군수공장 국유화 검토 등 지구촌 전체가 대혼란기에 접어든 듯하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뼈아픈 교훈은 온데간데없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자국 이기주의가 판치는 모양새다. 미국 등 강대국들은 자국 이기주의가 타국엔 잔혹할지는 몰라도 자국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레닌의 소련이 1991년 결국 막을 내렸듯이 기존 질서를 본능적 야만의 힘으로 짓누른 잔혹 행위들은 또 다른 반작용에 의해 결국 불행한 미래를 맞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야가 증오와 조롱의 말을 서로 퍼붓는 잔혹한 장면을 날마다 목도하고 있다. 일상화된 정치 실종은 우리 사회의 집단·개인 이기주의, 편가르기도 심화시켰다. 급기야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까지 발생했다. 443일이 흐른 19일 1심 법원은 내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런 와중에도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정 마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고도의 통치행위였다며 비상계엄 불가피론을 되뇌었다. 그를 통해 ‘결국 이해되고 변호될 것’이라는 오만함을 다시 대면한다. 이 오만함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수없이 경험한 잔혹한 지도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현재가 미래의 토양인 점을 감안할 때 잔혹한 역사, 즉 야만 회귀 시도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인류나 공동체 구성원을 불행하게 만드는 참담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잔혹함이 이해되거나 변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잔혹함이 설령 미래 사람들이 훨씬 행복하게 살기 위한 의도였다고 미화되더라도 결코 면책 사유로 용인해선 안 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반지성적 리더와 선동자들의 잔혹한 부추김에 현혹되거나 무감각해지지 않는 것이다. 또 문명의 근간을 흔드는 잔혹한 반지성 행위를 근절하려면 그 야만을 제대로 청산하는 필사적 노력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준엄한 판결은 잔혹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는 우리 사회의 큰 이정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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