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전후 일본'의 종언
‘천황을 국가원수로, 국방군 창설, 긴급사태 대응….’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이 2012년 총선 때 공개한 헌법 개정 초안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지향이 분명했다. 선거 결과는 자민당 압승. 개헌 발의가 가능한 중의원 3분의 2를 넘는 의석을 얻은 아베 신조 2차 내각이 출범했다. 하지만 헌법 개정안은 국민투표는커녕 국회에 제출되지도 못했다. 여전히 일본 국민은 평화헌법을 지지했고, 자민당 파벌과 연정 파트너 공명당의 이견 때문이었다.
일본은 헌법에서 전쟁을 포기했고, 천황을 정치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으며, 군의 통치를 차단했다. ‘평화 국가’로 국제사회에 복귀해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보수파는 ‘정상 국가’ 전환 시도를 멈추지 않았고, 번번이 좌절했다. 아베 전 총리조차 총선 승리 이후 안보법으로 집단자위권 행사 해석을 바꿨지만, 개헌에는 실패했다.
1955년 보수 세력 합당으로 탄생한 자민당 주도의 ‘55년 체제’는 ‘1과 2분의 1 체제’, 즉 집권 자민당의 독주에 맞서지 못하는 ‘꼬마 야당’의 시대였다. 지난 8일 총선은 극단적인 ‘1과 2분의 1 체제’를 초래했다. 자민당이 중의원 465석 중 316석을 얻어 개헌선인 3분의 2(310석)를 넘겼고, 개헌 지지 정당 의석은 모두 394석에 달한다. 보수 압승을 넘어선 국가 체제 변화의 분기점으로 해석되는 사건이다.
자민당은 파벌 경쟁 대신 선명 보수·개헌 노선의 구심력이 강해져 내부 걸림돌이 사라진 상태다. 18일 2기 내각을 출범시킨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강한 일본’을 내걸고 헌법 개정과 핵무기 규정 변경, 무기 수출 등에서 속도전을 펼칠 태세다. 미국발 세계 질서 재편기를 놓칠 리가 없다. 러-우 전쟁과 대만 사태 우려, 북핵 위협은 보수파의 염원을 실현할 좋은 명분이 된다.
1947년 미군정 하에서 일본 헌법이 제정된 이후 79년이 흘렀다. 이 ‘전후 일본’은 시간적 범주에 그치지 않고 전쟁 전과 단절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국가 정체성의 표현이기도 했다. ‘평화 국가’에서 ‘안보 국가’로. 지금 일본은 ‘전후 일본’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다. 일본 역사를 통틀어 가장 짧은 ‘부전(不戰)의 결의’ 시대의 종언이다. 한 해 1000만 명의 한국인이 방문하는 익숙한 이웃의 변신 예고가 예사로울 리 없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으로 동북아 질서는 변곡점을 맞는다. 일본은 어디로 가나. 우리의 안보 미래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성찰해야 할 질문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