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여기 사람이 산다
서울특별시 준하는 통합특별시 탄생 가시권에
재정 지원 내건 정부 주도 속도전에 주민 소외
선거 전략 아니라 주민 삶 개선하는 행정통합을
충남대전·전남광주·대구경북의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 12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이달 중 본회의 의결을 마치면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뽑고, 7월 통합 지자체가 출범한다. 충남대전은 국민의힘 소속 현직 단체장이 반발하고 있지만,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의 통합특별시 탄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광역 행정통합 논의는 1990년대까지 거슬러올라가지만, 지금의 속도전은 불과 두 달 전 불이 붙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5일 충남 타운홀 미팅에서 “그냥 연합 정도 수준이 아니라 가능하면 대규모로 통합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같은 달 18일 여당 충남·대전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통합된 자치단체의 장을 뽑을 수 있게” 하자고 시간표까지 제시했다.
행정통합은 단숨에 전국 사안이 됐다. 충남대전에 이어 전남광주가 출범을 앞두고 있던 특별광역연합 대신 돌연 행정통합을 들고 나왔다. “(대구시장이 공석인) 이럴 때가 찬스”라는 대통령 언급 이후 대구경북도 ‘6월 통합’에 뛰어들었다. 부산경남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주민투표와 분권 보장을 전제로 ‘2028년 통합’ 로드맵을 내놓았지만, 행정통합의 필요성과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행정통합의 배경은 명확하다. 수도권 일극체제의 폐해 속에 수도권과 지방 모두 위기를 호소한다. 수도권에 맞먹는 거점 권역을 만들어 지방 주도 성장을 유도한다는 균형발전은 지방 살리기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생존 전략이 되었다.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역대 정부 가운데 행정통합과 지방분권에 이 정도의 추진 의지와 실행력을 보여준 정부는 없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중앙이 재정 지원을 ‘당근’ 삼아 절박한 지방끼리 경쟁을 시킨 모양새는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6월 통합 선거를 행정통합의 ‘골든 타임’으로 정하고, 통합하면 연간 5조 원, 4년간 최대 20조 원 인센티브를 준다고 했다. 재원과 지속 가능성이 불투명한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중앙에 종속된 지방재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비판은 ‘관성과 기득권의 저항’이라는 대통령 발언에 묻혔다.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입장도 불안을 부추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부산경남처럼) 자체 일정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지역에 대해 상대적인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해놓고는 충남대전의 반발에는 “한 군데가 통과되지 않으면 그 영향을 해당 지역 주민이 받게 된다”고 경고했다. 행정안전부 차관은 “행정통합이 늦어져서 3년 뒤에 된다고 하면 1년밖에 (인센티브를) 못 줄 수도 있다”고도 했다.
무엇보다도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배제한 행정통합은 ‘무엇을 위한 통합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광역 행정통합은 대한민국 지방자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지역 주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전남광주 국회의원들과 만나 “주민투표는 불필요한 소요를 만들 수 있어 시·도의회 의결 방식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해달라”고 통합 방식 가이드라인까지 내놓았다.
‘중앙이 허락한 행정통합’ 국면에서 정작 주민들은 논의에서 소외돼 있다. 충남대전·전남광주·대구경북이 각각 100~300여 개의 특례를 담은 행정통합 특별법을 만들고, 국회가 ‘번갯불에 콩 볶듯’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는 동안 주민들은 특례 내용은커녕 통합의 효과조차 알기 힘들다. 최근에야 시민사회단체들이 최저임금 미적용이나 영리병원 추진 같은 독소조항을 발견해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눈에 띄는 성과를 위해 졸속 행정통합을 만병통치약처럼 추진한다는 비판도 힘을 얻는다. 명분과 의지가 분명하더라도 그 방식이 진짜 ‘기득권’인 중앙부처조차 설득하지 못하고 지방분권 개헌이라는 시대적 과제조차 밀어둔 채 지방을 경쟁시키는 방식이라면 오해를 피하기 어렵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판을 흔들 수 있다는 계산도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행정통합은 지역 주민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행안부는 청년을 위한 행정통합 기대 효과를 알리는 카드 뉴스에서 양질의 일자리 확보와 지역 경제 활성화, 문화 접근성 강화를 든다. 그런데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 조사에서 18~29세의 행정통합 찬성률을 보면 전 세대 가운데 부산에서는 가장 낮고, 경남에서는 가장 높다. 정부는 이들에게 구체적인 답을 내놓아야 한다.
부산경남도 정부만 바라보고 있을 일이 아니다. 특별법안의 통합청사 위치 같은 민감한 정보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어떤 통합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지금 당장 주민과 함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선거 전략이 아니라 주민 삶을 바꾸는 행정통합이 될 수 있다.
최혜규 사회부 차장 iwill@busan.com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