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그 시절 '로또' 백색전화
130년 전만 해도 한국은 전화라는 존재도 모르던 나라였다. 1896년 10월 덕수궁에 3대를 비롯해 정부 부처에 7대, 평양과 인천에 각 1대의 전화가 설치된 게 국내 최초다. 호칭은 영어 ‘텔레폰’을 음역해 ‘덕률풍(德律風)’이라 불렀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1941년에 1만 7000여 명까지 전화 가입자 수가 늘었지만 일본인이나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가입이 힘든 사치품에 속했다.
6·25전쟁으로 시설 대부분이 파괴되면서 전화 설비는 1957년께에 이르러서야 복구가 완료됐다. 이후 국민 생활이 향상되면서 주택용 전화 수요가 급증했으나 공급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화 가입 신청을 하고서도 1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일이 일상화했다.
전화 공급 적체가 심각해지면서 청약 경쟁 과열로 인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1970년 전기통신법을 개정하기에 이른다. 전화 가입권을 양도 가능한 재산권이 아니라 전화국에서 빌려 쓰는 사용권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법을 소급 적용할 수 없었기에 이미 양도 가능한 전화를 소유한 사람들까지 규제할 순 없었다. 법 개정 전에 보급된 전화는 신청서가 흰색이어서 사고 팔 수 있는 전화의 이름은 ‘백색전화’로 불렸다. 반면 법 개정 이후 보급된 임대형 전화는 신청서 색깔이 파란색이어서 ‘청색전화’가 됐다.
이 같은 조치 이후 백색전화 값은 하루가 멀다 하고 뛰어올랐다. 1970년대 중반 전화 신청 대기자만 무려 60만 명에 이르면서 백색전화 한 대 값은 260만 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서울 시내 50평 집값이 230만 원 안팎이었으니 전화가 바로 로또가 된 셈이다.
1970년대 ‘로또’ 백색전화의 거품은 1978년이 돼서야 비로소 꺼지기 시작했다. 세계 10번째로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디지털식 전자교환기가 도입되면서 회선 적체가 한방에 해소돼서였다. 그렇게 백색전화 거품이 꺼지고 나서야 전화는 서민 통신수단으로 거듭나게 됐다. 이후 유선전화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1000만 회선을 돌파하면서 집집마다 전화를 구비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올해는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가 인류 앞에 등장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청에 전화 관련 특허 신청이 접수됐으니 설 명절 직전 딱 150년이 됐다. 그 사이 전화는 휴대전화가 보편화하면서 가정용 유선전화가 불필요한 지경으로까지 발전했으니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