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계엄의 시간, 예술이 기억하는 얼굴
고야, 1808년 5월 3일, 1814.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2026년 2월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가 열리는 날이다. 판결은 어떻게 내려질 것이며, 정치권과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또한 훗날 역사는 이날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우리나라 비상계엄의 역사는 1948년 10월 21일 여순사건 당시 이승만 정권의 계엄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 4·19혁명 직전 이승만 정권은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계엄은 군사정권의 권력 장악 도구가 되었다. 1972년 유신체제 아래에서 계엄은 긴급조치와 더불어 사실상 상시적 통치 수단으로 기능했다. 1979년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 발발 후, 박정희는 10월 18일 0시 부산에 계엄령을, 20일 낮 12시 마산에 위수령을 선포했다. 1980년 5월 18일 0시 전두환은 전국 확대 계엄을 선포하고 광주 시민을 학살했다. 이 사건들은 계엄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장치로 작동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헤겔에 기대어 말했다. “위대한 세계사적 사실과 인물은 두 번 나타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이는 브뤼메르 18일(1799년 11월 9일)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친위 쿠데타를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이 말은 대한민국의 2024년 12·3 내란 사건에도 해당하는 격언이 될 수 있다. 그 핵심 의미는 ‘반복’이 아니라, 권력이 과거의 권위를 빌릴 때, 역사는 소극(익살극)으로 전락한다는 경고였다. 비극은 피를 남겼고, 반복된 소극은 권력의 초라함을 폭로한다.
고야는 ‘1808년 5월 2일’에서 프랑스군에 소속된 북아프리카 출신 맘루크 기병을 앞세워 마드리드 시민과 충돌하는 나폴레옹 군대를 그렸고, ‘1808년 5월 3일’이라는 작품에서 나폴레옹 군대가 마드리드 시민을 처형하는 장면을 그렸다. 어둠 속에서 총을 겨눈 군인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체제의 장치처럼 묘사된다. 반면, 흰 셔츠를 입은 남자는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그런데 고야는 그의 손에 예수의 ‘성흔’을 연상시키는 상처를 그려 넣어 이 사람이 억압받는 순교자이자, 민중의 대변자처럼 묘사했다. 따라서 이 장면은 단순한 처형의 기록을 넘어, 권력의 폭력과 시민의 존엄이 충돌하는 순간을 응축한다. 이 그림은 ‘비극’의 순간을 기록하지만, 동시에 반복되는 권력의 ‘모방극’을 예고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얼굴 없는 권력은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는 총을 든 자가 아니라, 총을 마주한 자의 얼굴을 기억한다. 계엄의 시간 속에서도 훗날 역사와 예술이 주목하는 것은 권력의 명령이 아니라, 존엄한 시민의 얼굴일 것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