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역설, 여전히 ‘손’은 창조의 주체로 남는다
리나갤러리 부산, ‘더 타임 오브 핸즈’
정인혜 안은선 도이재나 등 작가 9명
손이 기억하고, 빚은 공예·설치 작업
'The Time of Hands: 손의 시간 PART. 2' 전시 전경. 정인혜 작가 설치 작품이다. 리나갤러리 부산 제공
'The Time of Hands: 손의 시간 PART. 2' 2층 전시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The Time of Hands: 손의 시간 PART. 2' 2층 전시 전경. 리나갤러리 제공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들에 대한 향수는 더욱 짙어지는 것 같다. 순식간에 뚝딱 써내는 AI 보고서에 탄복하면서도 손끝 감각으로 미세한 균형을 조율해 나가는 손맛이 주는 예술적 감동은 AI가 대신할 수 없음을 새삼 인지하게 된다. 오는 28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리나갤러리 부산(송정광어골로 85-1)에서 열리는 ‘더 타임 오브 핸즈(The Time of Hands): 손의 시간’(파트 2) 전시는 ‘손’이 기능적인 도구를 넘어, 사유하고 기억하며 선택하는 주체로 존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시는 김성수, 김예지, 도이재나, 송민호, 안은선, 이예원, 이은지, 장문정, 정인혜 등 모두 9명의 작가가 함께한다. 공예, 조각, 회화와 설치를 두루 아우르는 작가들이 손으로 만들어내는 ‘시간의 결’은 도자, 금속, 유리, 혼합 매체 등 서로 다른 성질의 재료를 다루는 움직임과 선택을 통해 저마다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The Time of Hands: 손의 시간 PART. 2' 전시 전경. 정인혜 작가 작품. 리나갤러리 부산 제공
1층 갤러리 입구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작품은 정인혜 작가 라인이다. ‘어항별’이라는 제목으로 도자 신작 4점과 회화 1점, 그리고 지난해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작품을 함께 전시 중이다. 정인혜 작가는 ‘기억’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하나의 지점으로 불러오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갤러리 바닥에 고운 흰모래를 뿌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뒤 일일이 손으로 빚고 구운 도자를 오브제처럼 꾸몄다.
도이재나 작품 설치 모습. 리나갤러리 제공
도이재나의 ‘8개의 물줄기’. 김은영 기자 key66@
정도이·정재나 자매가 함께하는 ‘도이재나’ 팀은 일상의 익숙한 재료를 사용해 떠오르는 감각을 스케치하듯 즉흥적으로 연결하고 결합하는 ‘피규어 플랜트’(Figure Plant) 조형 작업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8개의 물줄기’ 같은 ‘물 조각’은 피규어 플랜트 방식으로 그 움직임을 구체화했는데 솟아올랐다가 떨어지고 다시 샘솟는 물의 리듬과 생동감이 잘 포착돼 있다.
김예지 작가 작품 설치 모습. 리나갤러리 제공
김예지 작가 작품 설치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김예지 작가는 ‘전신 거울’ 등 공예 베이스 작가만의 독특한 스타일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못다 한 말과 마주하고, “만약 그때 내가 그 말을 삼키지 않았더라면?’ 같은 질문을 던지며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The Time of Hands: 손의 시간 PART.2 리나갤러리 부산의 2층 전시 전경. 안은선 작가 작품이다. 리나갤러리 부산 제공
안은선의 ‘우림산수’(The Breath, Rainforest). 리나갤러리 제공
2층으로 이어진 전시는 섬유미술가인 안은선 작가 작품으로 연결된다. 비 내린 숲의 고요하고 청명한 풍경에서 출발한 ‘우림산수’(The Breath, Rainforest) 작업은 드로잉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프린팅과 두께가 다른 캔버스, 오간자를 겹겹이 쌓아 나뭇잎이 투영되고 중첩되는 풍경을 구성한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은 나뭇잎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그게 아니다. 작품 위에 놓인 무수한 자수의 선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력을 강조하며, 자연의 순환과 신비를 담는다.
'The Time of Hands: 손의 시간 PART. 2' 전시 전경. 리나갤러리 부산 제공
이예원 작가 작품. 리나갤러리 제공
바다가 보이는 창 쪽에 제단처럼 쌓은 탁자에 흰 천을 두른 뒤 그 위에 그릇과 화병 등이 즐비하다. 송민호 작가는 독특한 쓰임새와 조형미를 자랑하는 1인용 조립식 도자 그릇을 다수 선보였고, 이예원 작가는 고려청자의 전통적 형상에서 길어 올린 비색의 정취를 은채 장식을 통해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이은지 작가는 상단의 화병은 유리로 제작하고, 하단의 받침대는 화강석, 대리석, 철 등 건축 재료로 제작해 사물의 주춧돌을 놓은 것 같은 ‘제자리’ 시리즈 작업을 완성했다.
김성수 작가 작품. 리나갤러리 제공
장문정 작가 작품. 리나갤러리 제공
전통 건축과 가구의 구조적 원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지속해 온 김성수 작가는 조립을 통해 완성되는 구조의 ‘배색’ 시리즈를 보여준다. 전통 소반의 형태를 투명한 아크릴 소재로 구현한 작품 ‘가배소반’은 소반이 지닌 권위와 무게감을 덜어내며, ‘비움’과 ‘공유’라는 가치를 강조한다. 3D 프린터와 전통 공예의 만남을 시도한 장문정 작가는 가장 대중적인 3D 프린팅 기술인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용융 적층 모델링) 방식에 공예적 기법을 결합해 새로운 조형성과 미감을 탐구한다.
리나갤러리 관계자는 “빠르게 대체되고 효율로 환원되는 동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손은 여전히 시간을 만들어낸다”면서 “이번 전시는 인간의 손이 여전히 유효한 창작의 주체임을, 그리고 그 손이 만들어내는 시간이 지금도 의미 있는 질문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보여주고자 한다”고 전했다. 운영 시간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일·월요일과 공휴일 쉼). 문의 051-711-0286.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