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예술은 어디까지 타인의 삶을 끌어안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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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무제(총에 의한 죽음), 1990. 설치 전경 중 포스터 더미 일부. 1991년 휘트니비엔날레 전시. 비평·교육 목적의 부분 인용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무제(총에 의한 죽음), 1990. 설치 전경 중 포스터 더미 일부. 1991년 휘트니비엔날레 전시. 비평·교육 목적의 부분 인용

르네 니콜 굿, 알렉스 프레티. 요 며칠 사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총격으로 사망한 미국 시민권자의 이름이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1957~1996)가 1990년 제작한 ‘무제(총에 의한 죽음)’는 미술관 바닥에 포스터 더미를 쌓아둔 작품이다. 관람객은 각 낱장의 포스터를 한 장씩 가져갈 수도 있다. 포스터에는 1989년 5월 1일부터 7일까지 단 일주일 동안 총격으로 사망한 460명의 이름, 나이, 지역, 사망 당시의 상황이 짧게 기록돼 있다. 이 작품의 각각은 고인의 사진 이미지로 구성된 낱장의 포스터들이다. 이 낱장의 포스터는 관객이 가져가도록 유도되며, 다시 보충된다.

‘관계 미학’의 이론가 니콜라 부리오는 이 작품을 ‘관계 미술’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언급한다. 이 작품은 관객이 포스터를 가져가는 참여 행위를 통해 완성된다. 부리오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이 무엇을 재현하는가가 아니라, 작품이 어떤 관계의 장을 생성하는가이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작품을 유통시키는 참여자가 된다. 관객은 포스터를 읽고, 접어 가방에 넣고, 집에 가져가 벽에 붙이거나 누군가에게 건넨다. 이때 작품은 전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공간으로 확산된다. 부리오의 말대로, 이것은 과정의 기록이 아니라 “관객 속에서 현전하는 형식”을 가진 예술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윤리적 긴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포스터 속 이름들은 통계가 아니라 실제 삶의 흔적이다. 익명의 숫자로 소비되던 총기 사망자들이 다시 개별적 존재로 호명되는 순간, 관객은 불편한 질문과 마주한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소비하는가. 예술은 어디까지 타인의 고통을 매개로 삼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 더욱 절박하게 제기된다. 미국에서는 학교, 쇼핑몰, 거리에서 총격 사건이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최근 이민 단속 과정에서 발생한 총격 사망자들 역시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보도의 초점은 대개 사건의 경과와 책임 공방, 정책 논쟁에 맞춰진다. 속보와 후속 기사들이 이어지는 동안 개인의 서사는 정치적 쟁점에 흡수되어 잊힌다. 남는 것은 숫자와 사건 코드뿐이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이 1990년에 던졌던 질문은, 2020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더욱 절실하다.

관계 미술은 사회적 관계의 구조를 가시화하는 미학이다. ‘무제(총에 의한 죽음)’에서 관객은 포스터를 가져가는 순간, 타인의 죽음 속에 들어있는 서사를 소유하는 자가 된다. 동시에 그 기억을 전달할 책임을 떠안는다. 작품은 관객에게 감동이 아니라 윤리적 책임을 건넨다. 이 책임이야말로 관계 미학이 말하는 사회적 접촉의 실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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