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핵 군축 협정 종료… 무한 군비 경쟁 시대 열리나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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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배치 핵탄두 수 제한 담은
전략무기감축조약, 2011년 발효
15년 만에 연장 무산으로 끝나
핵무기 재확장 장애물 없어져

지난해 8월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8월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이 5일(현지 시간) 발효 15년 만에 종료됐다. 강대국의 핵 경쟁을 통제할 수단이 사라지면서 전 세계가 무제한 핵 군비 경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워싱턴DC에 본부가 있는 ‘군비통제 및 비확산 센터’(Center for Arms Control and Non-Proliferation)와 계열인 ‘생존 가능 세계를 위한 위원회’(Center for a Livable World)는 뉴스타트 종료로 미국과 러시아 양국이 서로의 핵무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던 조항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트에 단순히 양측의 핵무기 수만 제한하는 효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양측이 추측이 아니라 실제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고 이 기관들은 설명했다. 상호 핵 억제력이 작용한 것이다.

이 기관들은 “우리는 군과 정책 결정자들이 의존해 온 전례 없는 검증 수단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핵 재앙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50년 이상의 고된 외교 노력을 끝내버렸다”고 밝혔다.

뉴스타트 종료로 다시 냉전 시대를 살아가야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기관들은 “냉전의 정점 이래 여러 핵 군축 협정으로 세계 핵무기 보유량이 80% 이상 감축됐으나 이제는 러시아와 미국 모두 핵무기 재확장에 법적 장애물이 없어졌다”고 우려했다.

다만 이날 뉴스타트 만료를 앞두고 각각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이 각각 정상 간 통화를 한 데 따라 후속 논의가 이어질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뉴스타트는 2010년 4월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체결해 2011년 발효됐다. 이는 1972년 전략무기제한협정 이후 54년간 쌓아온 양국 핵 통제 역사이다. 뉴스타는 양국의 배치 핵탄두 수를 각 1550개, 배치 미사일과 폭격기 등 운반체 수를 각 700개 이하로 제한하고 주기적인 상호 핵시설 사찰을 하는게 골자다.

양국의 핵 군축 대화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단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뉴스타트를 1년 연장하자고 제안했으나 미국은 제안에 답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러 관계가 악화하고 사찰이 막히면서 조약이 만료되도록 둔 것이다.

미국은 중국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핵 군축 협정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4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배제하고는 제대로 된 핵무기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판단”이라고 전했다.

러시아는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미국에 유감을 표명하며 앞으로 어떤 의무에도 구속되지 않고 위협에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4일 성명에서 뉴스타트 시한 종료를 선언하고서는 “우리는 뉴스타트 당사국들이 핵심 조항을 포함한 조약 맥락 속에서 더는 어떠한 의무나 대칭적 선언에 구속되지 않으며 원칙적으로 다음 조치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가정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 핵무기의 90%를 보유한 두 나라의 핵 군축 협정이 만료되면서 핵 군비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유엔은 미국과 러시아에 즉각적인 후속 합의를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4일 “반세기 넘게 지나 처음으로 우리는 러시아와 미국의 전략 핵무기에 대한 어떠한 구속력 있는 제한도 없는 세계에 직면하게 됐다”며 “양국이 즉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 검증할 수 있는 제한을 복원하고, 위험을 줄이며, 우리의 공동 안보를 강화하는 후속 프레임워크에 합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레오 14세 교황도 4일 “이 제도를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이어가야 하며 포기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평화를 위협하는 군비 경쟁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공포와 불신의 논리를 공동선을 위한 윤리로 대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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