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로봇과 피지컬 AI, 부울경 산업생태계 혁신 기회다
지역 기업, 로봇 활용 가능 데이터 집적
클러스터 육성해 다른 산업과 시너지를
부산·울산·경남이 글로벌 피지컬 AI(인공지능)와 첨단 로봇산업의 핵심 요충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AI의 두뇌를 채울 고품질의 제조 데이터, 로봇의 관절과 근육이 될 핵심 부품 생산력, 지정학적 가치 등 좋은 요건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피지컬 AI는 실제 공장에서 발생하는 소음, 진동, 마찰열 같은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미국은 수십 년간 제조업 공동화로 학습용 데이터가 부족하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은 미중 패권 경쟁으로 데이터 반출이 막힌 상태다. 피지컬 AI와 로봇산업 패권을 차지하려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막강한 제조 인프라와 데이터를 보유한 부울경 지역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부울경의 가장 큰 장점은 로봇에 사용할 데이터 확보, 실증, 부품 공급, 생산, 시장 응용까지 한 번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 기업들이 협력해 모은 데이터가 6개월 만에 300TB(테라바이트)를 넘어섰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데이터의 질적 변화도 눈에 띈다. 과거 불량률, 생산량 같은 결과값이 아니라 ‘진동과 열에 따라 나사의 규격이 어떻게 버티는지’ 등 피지컬 AI가 학습할 수 있는 실제 산업현장에서의 프로세스를 담았다는 점이다. 로봇에 활용이 가능한 고품질 데이터가 모인 것은 지역에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제조 현장에서의 변수, 숙련공 기술을 데이터화하지 못한 글로벌 AI 기업들에겐 부울경은 거대한 ‘데이터 창고’가 되는 셈이다.
부울경 제조업이 피지컬 AI와 로봇산업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는 것은 분명 호재지만,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실제로 부산 지역 로봇기업 140여 곳의 약 70%가 연 매출 100억 원 미만 기업이다. 아직 영세한 업체가 많아 스케일업을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이어져야 한다. 개별 기업 차원의 데이터 정리를 넘어, 부울경 전체를 관통하는 ‘로봇 거점센터’와 같은 컨트롤타워와 클러스터 육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로봇산업이 성장할 경우 지역의 다른 주력 산업들과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에 로봇기업 성장을 가속화하는 집적단지와 거점센터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피지컬 AI와 접목한 로봇산업의 육성은 부울경 산업생태계를 혁신하는 절호의 기회다. 어쩌면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를 찾아 지역을 찾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지역 산업계는 단순히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 기술혁신과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 정부도 이를 기반으로 로봇산업을 육성하고 글로벌 표준화 작업을 주도할 수 있는 공공 차원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로봇산업의 메카로 첨단업종 입주가 가능한 ‘서부산권 복합산업단지’(부산 강서구 강동동)를 거점으로 삼는 것도 필요하다. 부울경 제조업이 로봇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계기로 삼아 대도약의 기회를 반드시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