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쿠팡의 사과, 그리고 국민 기만과 멸시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대성 사회부 차장

진정성 없고 때늦은 최악의 사과
김범석 의장은 노골적 기만·경시
분노 넘어 국민 자존심에도 상처
윤리 경영 저버린 기업, 성장 못 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사과’의 사전적 의미다. 사과는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시기도 중요하다. 차일피일 미룬 사과는, 이해와 계산에 따른 사과 또는 등 떠밀린 사과로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사과를 잘하면 신뢰를 회복하고 연대로 확장할 수 있다.


국내 온라인 유통 플랫폼 1위 사업자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쿠팡이 내놓은 사과는 이러한 사과의 조건을 어떤 것도 갖추지 못한 최악의 사과였다. 진정성이 전혀 없었고 때늦은 사과였다. 소비자를 내내 기만해왔던 쿠팡은 허울뿐인 사과로 공분만 산더미처럼 키웠다.

그간 쿠팡이 보여준 대응은 노골적인 기만행위였다.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노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 마케팅 목적이 짙은 보상안을 내놓았고, 이마저도 사실상 ‘휴지 조각’ 이용권을 주면서 역대급 보상안을 내놓았다며 생색냈다. 정부 조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피해 규모를 축소한 셀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종 의사 결정자인 김범석 의장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이번 사태를 경시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였다. 국회 현안 질의나 청문회엔 ‘중요한 비즈니스 일정’이 있다며 불출석했고, 약 한 달 만에 나온 그의 사과문은 전방위적인 압박에 마지못해 내놓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많은 소비자는 시장 점유율 방어와 이익 추구에만 매몰된 김 의장의 비루한 기업가 정신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국민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매출의 90% 이상을 한국에서 올리고도 사회적 책임 이행과 사회 공헌은 미국에 집중하는 김 의장의 행태를 두고 ‘역시 검머외(검은 머리 외국인)’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그가 얼마나 로비를 벌였는지, 미국 정부와 국회, 경제계가 쿠팡의 불공정 행위와 위법 행위는 안중에도 없고,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하고 있다”며 쿠팡을 감싸고도는 모습에 국민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까지 느끼고 있다. 김 의장의 이러한 배짱 두둑한 태도는 ‘소비자들이 욕해도, 쿠팡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과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논리에서 오는 확신에 기반한 것일지 모른다.

이번 사태의 결론을 두고 AI는 로켓 배송, 쿠팡이츠, 쿠팡플레이로 이어지는 쿠팡의 플랫폼 생태계가 높은 시장 점유율로 생활 깊숙이 묶여 있어, 불매 운동이나 탈팡(쿠팡 회원 탈퇴)이 힘을 쓰지 못할 것으로 봤다. 또 ‘미국 국적자’ ‘미국 상장 기업’을 방패막이로 한국 정부와 국회의 압박을 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업정지까지 고려하겠다던 정부는 결국 유통·판매업자, 물류 종사자 등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과징금 부과를 차선책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 경우 쿠팡은 수수료 인상이나 납품 단가 인하 등 새로운 과금 체계를 도입하고, 알고리즘을 조정해 광고 등의 명목으로 마진을 기존보다 더 챙겨 가는 방식 등으로 과징금 부담을 전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윤리 경영은 기업이 공정성과 투명성 등 윤리를 행동 원칙으로 삼아 법적·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고,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는 규범적 판단과 도덕적 가치 기준을 우선적으로 따르는 경영 원칙이다. 기업은 윤리 경영을 통해 가치와 신뢰를 높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특히 윤리 경영은 이해 관계자 간 균형 있는 가치 분배를 목표로 한다. 그런 점에서 쿠팡은 협력업체, 소비자와 가치 분배는 등한시하고 오직 이윤만 좇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거리가 먼 기업이다.

하인리히의 법칙을 윤리 경영에 적용하면, 치명적인 한 건의 비윤리적 행위로 기업이 파산하기 전에 수십 건의 가벼운 비윤리 행위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쿠팡은 지금까지 할인율 부풀리기, 자사 PB 상품에 유리한 검색 순위 조작, 임직원이 동원된 가짜 리뷰 작성 등 불공정 행위를 해왔고, 일용직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취업 규칙 꼼수 변경이나 쿠팡 물류센터 근로자 사망과 관련한 증거 인멸 시도와 과로사 은폐 의혹 등으로 숱한 위험 신호들을 울리고 있다.

쿠팡이 결국 웃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 속에도 정부와 국회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건, 윤리 경영을 저버린 기업은 반드시 비극적 말로를 맞이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짓밟힌 국민의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줄 곳은 정부와 국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검찰 수사로 각종 불공정·위법 행위를 의심할 여지 없이 밝히고, 과징금 부담을 입점 업체와 물류 노동자에게 부당하게 전가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쿠팡은 국민의 신뢰가 회복 불가능한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가고, 행한 대로 그 대가를 받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믿는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