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부산~블라디보스토크 하늘길 빨리 다시 열려야
이재혁 (사)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러·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4년째 단절
관광객·경제인·유학생 등 불편 극심
경제포럼 등 자매도시 활동 개점휴업
정부 바뀌어도 직항 폐쇄 여전히 고집
고려인 동포 15만 명 이동권도 막아
항공편 재개 우호 관계 회복 계기될 것
발해의 동쪽 끝이었던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예부터 한반도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일본이나 미국보다 앞서서 한인 디아스포라가 처음으로 형성된 곳이며, ‘대한국민의회’라는 이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가장 먼저 선 한국 독립운동의 북방 기지였다. 북방을 떠도는 유이민의 아픔을 노래한 일제 강점기 시인 이용악, 그의 시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의 ‘우라지오’도 블라디보스토크를 말한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이름은 러시아어로 ‘동방을 점령하라!’라는 뜻으로, 1860년부터 러시아 제국 정부가 기울어가는 청나라를 겁박하여 차지하기 시작한 땅이었다. 도시로 성장한 건 146년 전인 1880년으로, 2018년 12월부터는 하바롭스크를 제치고 러시아 연방의 ‘극동 연방 구’의 ‘지역 수도’로 발돋움했다. 극동개발과 아시아 중시정책의 하나로 푸틴 행정부가 2015년부터 ‘동방 경제포럼’을 열고 있는 이 도시는 앞으로 남북문제가 다시 풀리고 부산~북극항로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블라디보스토크와 부산 사이에 하늘길이 4년째 끊어져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이후에 줄곧 그렇다. 직항로가 닫혀있으니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쉽지 않아서 재외국민, 경제인과 상인들, 유학생, 관광객들의 고충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011년부터 해마다 부산에서 열리던 부산~극동 러시아 경제포럼도 이래서 ‘개점휴업’상태다. 이전에는 이렇게 냉랭하지 않고 사이가 좋았다.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오가는 가까운 거리인데다 편 수가 많을 때는 주 12회나 다녀서 서로 왕래가 잦았다. 1992년 6월에 두 도시 사이에 이미 자매도시 협정이 맺어졌고, 협정 체결 20주년 축하행사가 부산시 대표단과 문화공연단이 참석한 가운데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성대하게 열리곤 했다. 9288km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떠나는 블라디보스토크 역 근처에 앉아있으면 곳곳에서 부산 사투리가 들렸으며, 부산의 대형 병원이나 서면 의료단지도 러시아 환자들로 북적였다. 러시아엔 종합검진, 성형, 암 치료, 뼈 수술 수요가 많다. 이들이 예전의 독일이나 이스라엘에서 한국으로, 특히 높은 의료 수준과 비교하여 치료비와 물가가 싸고 산과 바다가 같이 있는 부산으로 많이 왔기 때문이다.
물론, 하늘길이 막혀있는 지금 상황에서도 배로는 연해주를 오갈 순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몽골로 돌아서 가면 항공이나 기차로도 러시아 입국이 가능하다. 그러나 배는 멀리 강원도의 속초나 동해시를 거쳐야 하는데다 멀미, 독과점요금, 불편한 출항 일정 등으로 이용하기가 쉽지 않고, 우회 항공로도 비용, 시간, 편의성 면에서 문제가 많긴 마찬가지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지인 올가(55)는 딸이 열성적인 한류 팬이라서 중국의 상하이를 거쳐 모녀가 함께 부산을 가끔 찾는다. 그런데 항공편 때문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직항이 있을 때보다 항공료도 2~3배 비싸고 환승 대기시간도 길어요. 한국정부의 서방 제재 동참, 러시아 정부의 한국에 대한 ‘비 우호 국가’ 지정, 그런 과거를 넘어서 이젠 직항로를 복구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라고 한다. 그렇다면, 누가 하늘길을 계속 막고 있을까? 러시아 정부는 처음부터 항공망 폐쇄에 반대했다. 답은 대한민국이다. 일본 정부도 우리와 비슷하지만, 실리에 밝은 일본은 그래도 작년 초부터 크렘린과 물밑에서 직항 재개를 활발히 논의 중이다. 일본 방문을 원하는 러시아인들을 위해 올해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일본 비자 발급 센터를 다시 연다는 보도도 있다. 이렇게 서로 다투면서도 협력할 일을 찾아 협조하는 게 맞지, 아예 길을 계속 막고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한번 정한 정책이라고 끝까지 밀고 가는 아집과 고집이 문제를 계속하여 악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 러시아 측에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2023년 12월, 2024년 6월, 지난 1월 15일 등 세 번에 걸쳐 한러 관계의 실용적 접근과 회복을 강조하였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의아한 건 ‘민생 정권’이라는 현 정부의 태도인데,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직항로 폐쇄만은 앞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붙들고 있을 심산 같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 10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특이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동북아평화연대 등 시민단체, 동포단체 등 128곳이 공동의 이름으로 “재외국민과 고려인 동포 15만 명의 이동권을 침해하지 말라!”라며 한·러 직항 항공편 재개를 직접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정부든 국회든 이에 대해 들은 척 만 척한다. 일단 막힌 하늘길부터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경제, 사회문화, 교육 등 여러 방면에서 부서진 두 나라 관계에 다시 핏기가 돌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원하는 북극항로도 한반도 쪽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