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소멸의 풍경과 생성의 회화 - 유현욱의 가덕도 프로젝트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유현욱, 사라지는 붉은 섬, 동백 숲의 동백 꽃잎으로 만든 안료, 2025. 작가 제공 유현욱, 사라지는 붉은 섬, 동백 숲의 동백 꽃잎으로 만든 안료, 2025. 작가 제공

가덕도. 개발과 생태가 충돌하는 경계의 장소. 신공항 건설은 망국적인 ‘서울공화국’을 넘어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을 취한다. 거부하기 쉽지 않은 명분으로 진행되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 아래,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해안 숲과 동백나무 군락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 소멸의 현장에서 유현욱의 회화는 시작된다. 그의 작업은 풍경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생명의 시간을 기록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는 이념적 논쟁의 현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대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경제적 효과가 불분명한 개발’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생명·생태 파괴’를 예술의 언어로 포착한다. 꽃과 나무, 풀과 숲, 그 미세한 생명들의 숨결을 기억하고자 하는 그의 행위는 개발의 논리가 삼켜버린 세계를 되살리려는 예술가의 윤리적 응시이다. 그것이 유현욱의 가덕도 프로젝트의 단순하고도 명확한 이유이다. 그는 동백, 감잎, 마삭풀, 고사리, 개모시풀 등 해안 식물들을 직접 채집해 말리고, 삶고, 침전시켜 안료를 만든다. 이 안료는 단지 색의 재료가 아니라, 시간과 생명의 잔존물이며 사라지는 자연의 육체 그 자체다. 이 안료들로 그린 그림은 모두 꽃잎의 분말과 잎의 섬유, 그리고 작가의 손길이 서로 스며든 생태적 회화의 층이다. 그는 이 섬에서 채취한 안료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그림을 그린다. 여러 작품 가운데 하나만 소개하기로 한다.

그의 ‘사라지는 붉은 섬’은 동백 숲의 동백 꽃잎을 다듬고, 삶고, 침전시켜 얻은 재료로 그린 그림이다. 유현욱의 그림에서 숲은 단일한 풍경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그는 가덕도의 동백 숲을 다시점적 구조 속에서 해체하고, 수많은 점의 집합으로 재구성한다. 원근법적 시선이 배제된 화면에서 숲의 안과 밖, 시간과 공간, 생성과 소멸은 서로 스며든다. 산업사회가 끊어 놓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잇는, ‘살아 있는 물질로 그린 풍경’이다.

가덕도의 동백은 이제 물감이 되어 다시 피어난다. 그림은 붉은 잎사귀처럼, 사라지면서도 살아나는 생명의 형상이다. 개발의 논리 속에서 지워지는 풍경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생명들의 기억을 소환하는 기록을 남기는 일, 그것이 유현욱이 선택한 예술의 윤리다. 작가가 손수 만든 식물 안료의 발색은 약하고,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랜다. 그러나 그는 그 불안정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시간의 흔적이자 생명의 증거로 받아들인다.

예술은 세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사라지는 것을 기억하게 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제나 생성의 다른 이름이다. 유현욱의 가덕도 프로젝트는 소멸의 풍경 위에 피어나는, 느리고 조용한 생성의 회화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