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 “끝까지 대본을 놓지 않는 게 내 연기 방식”
'왕과 사는 남자' 광천골 촌장 역할
단종의 마지막 시간 지켜보는 인물
"전 세대 함께 볼 만한 작품 드물어"
배우 유해진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설 연휴 극장 관객을 찾는다. 쇼박스 제공
“끝까지 생각하는 것, 끝까지 대본을 놓지 않는 것. 그게 저의 연기 방식이에요.”
배우 유해진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와의 시간을 이렇게 돌아봤다. 이 작품은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선왕 단종과 그를 맞이한 광천골 촌장의 이야기를 그린 사극이다. 유해진은 유배지의 촌장 엄흥도 역을 맡아 단종의 마지막 시간을 곁에서 지켜보는 인물을 빚어냈다. 유해진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이야기에 잘 녹아드는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엄흥도는 사서에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인물로 짤막하게 기록돼 있다. 영화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엄흥도가 유배지를 관리하던 촌장이었고 어린 왕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정을 쌓았다는 설정을 더했다. 유해진은 “한 인간이 어려움을 겪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의 정서가 마음에 남았다”며 “무겁지만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영화들은 특정 타깃을 분명히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젊은 층부터 노년층까지 함께 볼 수 있겠다고 느꼈다”며 “이런 작품을 배우로서 만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유해진은 이 작품을 하면서 여러 차례 감정이 북받쳤다고 했다. 촬영 중에도, 촬영이 끝난 뒤에도 그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단다. 그는 “촬영하면서도 여러 번 울었고, 분장하면서도 울고 시사회 때도 울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단종 이홍위와 엄흥도가 독대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부터 울었던 것 같다”면서 “원래 역사적으로도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이 오래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작품의 감정이 앞으로도 꽤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 장면 이야기를 하니까 감정이 또 올라오네요..”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단종의 물장난 장면은 그런 감정의 연장선에서 탄생했다. 유해진은 “사실 제가 제안해서 만든 장면”이라고 했다. 그는 “촬영 장소가 실제로 물이 흐르고 절벽이 있는 곳이었다”며 “촬영 중에 지훈이가 평상복을 입고 물에 손을 씻는 모습을 봤는데, 그 사진을 보고 감정이 확 왔다”고 돌아봤다. 이어 “‘진짜 단종이 있었다면 저 나이에 이렇게 물장난을 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감독에게 이야기했고, 실제로 찍게 됐다”며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항준 감독과의 작업은 오래된 인연 위에서 이뤄졌다. 서울예대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현장에서 가감 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유해진은 “감독님은 굉장히 유연한 사람”이라며 “제가 제안한 부분이 있으면 ‘이틀만 시간 달라’고 하신 뒤 실제로 수정해 오신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현장에서는 연기가 좋지 않은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면서 “현장에서 웃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함께 웃는 게 더 중요하다”고 웃었다.
단종 이홍위 역을 맡은 박지훈과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다. 유해진은 “촬영하면서 박지훈 배우의 에너지에 놀랐다”며 “아역 출신이라는 것도 몰랐는데, 연기할 때 확실히 준비가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또 “촬영장이 오지라 분장 버스에서 촬영장까지 2㎞ 정도를 걸어야 했는데,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그때 박지훈 배우와 함께 걸으면서 연기와 작품에 관해서 대화를 나눴고 잡담도 했다”고 말했다. “엄흥도와 단종의 마음에 관해서 계속 생각해봤어요. 무식하게 계속 생각해보고, 대본을 계속 보는 거죠. 촬영 직전까지 쉬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마지막으로 유해진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제 연기는 항상 똑같다. 다르지 않다”며 “제가 노력하는 부분은 이야기에 잘 녹아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끝까지 생각하고, 끝까지 대본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촬영 직전까지도 계속 고민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뭔가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를 보면 관객들도 감정이 오래 남을 거예요. 오랜만에 남녀노소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나온 것 같아 좋습니다(웃음).”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