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문화시선] 연대와 숫자의 힘 ‘퐁·반 500’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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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선임기자

지난 2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A 갤러리는 삼삼오오 모여든 작가들로 북적였다. 갤러리에 작가들이 모이는 건 당연하지만, 이날만큼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결기에 찬 듯하면서도 마음 맞는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덕분인지 축제 같은 분위기도 전해졌다. 20여 명의 작가는 직접 가져온 한두 점의 작품을 B 작가의 진두지휘에 따라 전시장 곳곳에 배치했다.

A 갤러리를 나와 C 화랑을 찾아갔는데 그곳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C 화랑은 작가 겸 기획자 D가 중심이 돼 쇼윈도에 작품을 걸고, 전시장을 꾸미느라 여념이 없었다. 또 다른 E·F 전시 공간도 사정은 비슷했다. 퐁피두 분관 유치 반대 서명 500명을 기념하는 릴레이 미술 전시 ‘퐁·반 500, 부산 미술인 한마음展’이 이날 오후 부산 전역의 20여 갤러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돼 2월 8일 전후까지 계속된다.

부산미술협회 퐁피두 분관 유치 반대 대책위원회 김성헌 공동대표는 “부산시에서 추진 중인 프랑스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 사업과 그에 수반된 이기대 천혜 자연 난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뜻을 부산의 미술인과 지역 화랑이 공동으로 표명하는 집단적 예술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김 공동대표는 이날 현재 참여 작가 429명, 반대 서명 미술인은 685명으로, 참여 갤러리(26개)와 작가 수는 증가 중이라고 덧붙였다.

전시 내용은 ‘퐁피두 반대’(퐁·반)라는 강력한 사회적 슬로건과 달리, 작가의 평소 화풍이 담긴 일반적인 작품이 대부분이다. G 작가는 “연대에 방점을 두고 참여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전시는 개별 작품의 내용보다는 ‘500명 이상의 작가가 한목소리를 내며 모였다’는 집단 행위에 큰 무게를 둘 수 있다. 다만, 모 갤러리 대표 H와 J는 “전시장을 구하지 못한 작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장소를 제공했는데 이를 불편하게 보는 시각이 있어서 곤혹스럽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물론 이번 전시는 세련된 큐레이팅이 가미된 대형 기획전과는 결이 다를 수 있다. 그래도 회화뿐 아니라 사진, 판화, 조각 등 부산 미술의 전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부산 미술의 ‘두께’를 보여준다. 관람객은 “이 작가는 퐁피두 유치를 반대하면서 왜 평화로운 풍경화를 내걸었을까?” “이 추상화가 퐁피두라는 거대 자본 미술관과 부딪혔을 때 어떤 의미를 가질까?”로 질문을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부산 작가들은 ‘해외 유명 브랜드(퐁피두)가 없어도 치열하게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존재로서 증명’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퐁피두 부산 분관’ 본계약 체결 시한이 3월 말로 연장된 만큼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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