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고(最古) 동인 ‘윤좌’와 ‘혁’을 아시나요
올해 창립 60주년 기념호 발간한 ‘윤좌’
78회 정기전 이어 ‘나눔’ 전시 여는 ‘혁’
1960년대 부산서 탄생…문학·미술 동인
60년 넘도록 활동한 ‘지역 문화의 자랑’
부산 최초의 미술 동인 ‘혁’이 지난 22일부터 오는 30일까지 ‘함께 나눔’전을 수영구 망미동 이웰갤러리에서 열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윤좌’ 동인회는 지난 7일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1층에서 ‘부산의 문화사랑방 윤좌 60주년의 발자취’를 주제로 한 출판 기념회를 개최했다. 윤좌 제공
부산의 문학 동인 ‘윤좌’(輪座)와 미술 동인 ‘혁’(爀)은 각각 문학과 미술이라는 다른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부산 문화사라는 큰 흐름 속에서 매우 중요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두 동인 모두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60년대 초반 부산에서 탄생했다. ‘혁’은 1963년, ‘윤좌’는 1965년이다. 또한 두 단체는 각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통틀어 손꼽히는 장수 동인이다. 대부분의 동인이 몇 차례 동인지를 내거나 전시하고 사라지는 것과 달리 두 단체는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이는 한국 현대 예술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록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두 단체의 최근 활동을 전한다.
‘윤좌’ 동인회는 지난 7일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1층에서 ‘부산의 문화사랑방 윤좌 60주년의 발자취’를 주제로 한 출판 기념회를 개최했다. 윤좌 제공
■‘윤좌’ 60주년 기념호 발간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윤좌’는 의미 있는 기념호를 지난달 발간했다. 1965년 6월 발행을 시작해 60년이 된 지금까지 거의 매년 발행해 온 <輪座>(윤좌 동인, 2025·제52집)이다.
박선목(부산대 명예교수) ‘윤좌’ 동인 회장은 60주년 기념호 발간사에서 “‘윤좌’의 동인들은 각자의 문학적 장르를 살려 각자의 문단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윤좌’의 무리에 둘러앉아 새로운 문장과 시구를 다듬고 독창적 취미를 살려 가면서 60년을 이어 왔다”면서 “60년 세월에서 재정의 어려움에 동인지 출판이 해거리도 하고 휴간되기도 하였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끊이지 않는 촌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윤좌 창립 60주년 기념호 표지. 윤좌 제공
‘윤좌’ 창립 60주년 기념호에는 한글학자 류영남의 축하 휘호와 시사만화가 안기태 화백의 축하 만평, 특집으로 ‘윤좌’ 원로 동인인 박선목, 류영남, 김정자, 김이상의 인터뷰와 함께 ‘내가 본 윤좌’, ‘윤좌와 나’ 그리고 동인들의 글이 다채롭게 실렸다.
‘윤좌’는 ‘여럿이 둘러앉아 정담을 나눈다’는 뜻이다. 어느 한 사람의 주도보다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함께 나누고 교류하는 활동을 지향했다. 수필 동인지로 출발했지만, 인간의 다양한 개성과 자유와 평등을 동인지 <윤좌>를 통해 실현해 나가는 인문학적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윤좌’의 동인 선언은 한국 시단에 큰 족적을 남긴 청마 유치환이 짓고, 글씨는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인 먼구름 한형석이 썼다. ‘제각기 가진 행로 위에서/ 앞서가고 뒤서 가고 하는 중/ 지극히 우연히 이뤄진/ 한 무리의 일행인지 모른다/ 거기엔 까다로운 그 무엇도 있을 턱이 없다…’
창간 동인으로는 향파 이주홍, 요산 김정한, 청마뿐 아니라 시인 이영도, 한형석, 그리고 의사이자 수필가였던 박문하, 소설가 최해군 선생 등이 참여했고, 동물학자이자 교육자인 김하득, 작곡가 이상근, 영화평론가 허창, 식물학자 이용기 등이 힘을 더했다. 그 후 시차를 두고 수필가 김병규, 국어학자 박지홍, 음성학자 김영송, 소설가 이규정, 화가 송영명, 문학평론가 남송우 등이 가세했다.
‘윤좌’ 동인회는 현재 정회원 20여 명, 명예회원 10여 명 등 약 30여 명이 활동한다. 지난 7일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1층에서 ‘부산의 문화사랑방 윤좌 60주년의 발자취’를 주제로 한 출판 기념회를 갖고 동인들의 시낭송과 윤독, 나와 윤좌의 인연, 회고담 등 다채로운 이야기 마당을 펼쳤다.
부산 최초의 미술 동인 ‘혁’이 지난 22일부터 오는 30일까지 ‘함께 나눔’전을 수영구 망미동 이웰갤러리에서 열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혁’ 동인 30일까지 ‘함께 나눔’전
1963년 창립전을 시작으로, 매년 정기전과 다양한 기획전을 이어 온 ‘혁’은 올해도 지난 9월 12~29일 해운대구 갤러리조이에서 ‘함께, 변화의 물결’을 주제로 한 제78회 미술 동인 ‘혁’전을 치렀다. 지금은 올해 마지막 전시인 ‘혁’ 동인 소품 초대전 ‘함께 나눔’을 오는 30일까지 수영구 망미동 이웰갤러리(망미번영로 110번길 7)에서 열고 있다.
미술 동인 ‘혁'은 부산에서 최초 설립된 현대미술 단체이다. ‘혁’은 당시 화단의 주류였던 국전 중심의 구상 화풍에 반기를 들고 실험적 추상을 추구했다. 창립 멤버는 김종근, 김동규, 김홍규 박만천 김종철 등 20대 작가 5인이고, 이후 김홍석이 합류했다. 이들이 지향했던 ‘대작’ 중심의 전시와 철저한 월례 비평회 전통이 남아 있다.
부산 최초의 미술 동인 ‘혁’이 지난 22일부터 오는 30일까지 ‘함께 나눔’전을 수영구 망미동 이웰갤러리에서 열고 있다. 사진은 오프닝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22일 전시 오프닝에서 만난 유진재 ‘혁’ 동인 회장은 “70회 이상 이어 온 ‘혁’ 동인전은 대부분 100호 이상의 대형 작품을 선보였는데, 오늘은 아주 자그마하면서도 계절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전시를 열게 돼 감회가 새롭다”면서 “특히 이번 전시 작품가는 갤러리 수익금을 제외한 금액으로 책정하고, 판매 수익금은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될 예정이어서 작품을 소장하는 선택이 누군가의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웰갤러리 김경희 대표도 “작품을 소장하는 일이 나눔이 되는 전시”라며 ‘혁’ 동인 소품 초대전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당부했다.
오프닝에 참석한 민병일 부경대 명예교수는 “‘혁’ 동인은 당시로선 정말 생소한 현대미술의 기치를 들고 나왔고, 오늘날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대단한 미술 동인”이라면서 “전국적으로도 이런 ‘혁’ 같은 동인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 명예교수는 “오랫동안 ‘혁’ 동인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번에는 평소 보지 못하던 소품으로 전시를 열고 좋은 일도 하겠다고 나서 참으로 아름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부산미술협회 최장락 이사장도 “긴 역사를 바탕으로 30여 명의 ‘혁’ 작가들이 각자의 개성 있는 표현 방법으로 확장된 예술 세계를 구현해 왔으며, 이는 부산 미술계의 위상을 굳건히 지켜온 자부심이자 동력”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번 전시는 1세대 작가 강선보를 비롯해, 강귀화 금경 김남주 김미화 김선애 김정희 김주희 문지민 박수진 박순연 박태홍 석점덕 유순천 유진재 윤미희 윤슬 이명호 이상희 이연희 이주영 조연승 지경희 최영아 최창임 하훈수 티그란 아코피얀 등 27명이 참여했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