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양력은 곧 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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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억 SK오션플랜트 고문·예비역 해군 준장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말이 국민적 구호였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직면한 환경을 돌아보면, 이제 그 구호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해양력은 곧 국력이다.”

정부가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한 결정은 단순한 행정기관 이전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스스로를 해양국가로 재정의하려는 선언이며, 부산을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국가 전략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부산은 대한민국 근대 해양사의 출발점이다. 부산포라는 작은 어촌에서 시작한 부산은 1876년 개항 이후 일본과의 교역은 물론, 동아시아 해양 네트워크의 핵심 관문 역할을 수행해 왔다. 바다를 통해 문물이 들어오고, 기술과 인력이 오갔으며, 새로운 세계 질서가 부산을 통해 유입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부산을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닌 ‘해양 교류의 플랫폼 도시’로 성장시켰다. 오늘날 부산항이 세계적인 환적항으로 기능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축적된 해양 경험과 지리적 이점이 자리하고 있다.

부산의 해양적 가치는 전쟁의 위기 속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존속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는 부산항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유엔군 병력과 군수 물자, 식량과 장비는 바다를 통해 부산으로 들어왔고, 부산은 이를 전선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해상 교통로 (Sea Line of Communication), 즉 국가의 생명선 역할을 수행했다. 만약 부산항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경험은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해양 통제력과 항만 운영 능력은 전시뿐 아니라 평시에도 국가 생존의 핵심 요소라는 점이다.

부산이 해양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결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약 17년여 전, 해군작전사령부가 진해에서 부산으로 이전할 당시에도 핵심 배경은 분명했다. 해양작전의 중심은 항만·물류·연합작전 환경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현재 부산에는 대한민국 해군작전사령부뿐만 아니라, ‘주한미해군사령부(CNFK)’가 함께 위치해 있다. 이는 부산이 단순한 국내 해양 거점이 아니라, 한미 연합 해양안보의 핵심 노드임을 의미한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이러한 군사·안보·산업 인프라와의 결합을 제도적으로 완성하는 조치라 할 수 있다.

이제 시선은 미래로 향해야 한다. 기후 변화와 글로벌 물류 재편 속에서 북극항로는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해상 실크로드로서 북극항로는 해운, 조선, 에너지, 안보 전반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부산은 이 변화에 가장 먼저 대응할 수 있는 도시다. 세계적 항만 인프라, 조선·해양산업 기반, 해군과 연합 해군의 존재, 그리고 해양수산부 이전이라는 정책적 결단까지 갖추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명확한 국가 해양 전략과 인재 양성, 그리고 해양력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컨트롤타워의 실질적 기능 강화다.

부산의 해양사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자산이며 미래의 가능성이다. 개항의 기억, 전쟁의 교훈, 해군 전략의 축적, 그리고 북극항로라는 미래 비전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를 ‘해양력의 시간 항로’라 부르고 싶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그 항로 위에 놓인 중요한 이정표다. 이제 부산은 질문받고 있다. 우리는 해양수도를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이전을 받아들였을 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대한민국 해양력의 미래이자, 국력의 방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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