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백화점이 사라지는 자리에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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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 경제부 기자

기사가 보도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지역 커뮤니티는 여전히 뜨겁다. 롯데백화점 동래점이 3990억 원에 매각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SNS에서는 관련 소식이 넘쳐난다. ‘대형 호재가 터졌다’ ‘무슨 하이엔드가 들어설지 기대된다’는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롯데백화점 동래점은 롯데쇼핑이 이미 2014년에 사모펀드 운용사인 캡스톤자산운용에 매각했다. 이번 매각은 캡스톤이 다른 시행사에게 부지를 넘긴 것으로, 임대차 문제 등으로 매각이 완전히 종료되지는 않아 새 시행사의 윤곽을 밝히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롯데백화점은 2034년 12월까지 영업이 보장돼 있어 백화점이 당장 문을 닫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업계는 새 시행사가 이 부지를 초고층 주상복합으로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부산의 다른 여러 시행사들도 주상복합 개발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부터 꾸준히 동래점 부지 매입을 검토해왔다. 다만, 임대 계약 조건이나 침체된 지역 부동산 분위기 등을 감안해 실제 매입에 나서지는 않았다고 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자리에 주거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동래점 역시 유사한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소규모 백화점이라 하더라도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늘도 밥벌이를 하고 있다. 모든 직원이 양질의 일자리를 가졌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역 경제의 버팀목 중 하나다. 백화점 주변 상권까지 포함하면 두말할 나위 없다.

NC백화점 서면점, 메가마트 남천점, 홈플러스 연산점 등 지난 5년간 문을 닫은 부산 소재 대형 판매점은 6곳에 달한다.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런 자리엔 어김없이 초고층 아파트나 주상복합 개발이 추진된다. 매출이 저조한 일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계속해서 매각 물망에 오른다. ‘용도 제한만 풀리면 주상복합으로 개발한다’는 이들이 늘 주시하고 있다. ‘노인과 바다, 그리고 아파트’라는 부산의 수식어가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다.

부산 유력 건설사들은 해안가나 중심 상권지에 노른자위 땅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거나 용도 변경만 가능해지면 이 땅들을 초고층 아파트로 개발하려고 한다. 적기가 오기만을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다.

사모펀드나 사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뭐라 할 수는 없다. 안타깝지만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 평당 수천만 원에 분양하는 사업이 가장 큰 이윤을 보장한다. 적어도 부산에서는 그렇다. 그렇다고 이를 두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한다면, 부산의 도시 경쟁력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부산시가 중심을 잡고 도시의 설계를 총괄해야 한다. 성장하는 도시에는 아파트 대신 창업 센터나 연구 단지,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이 들어선다. 기업이나 금융기관 유치에도 사활을 건다.

부산의 현실은 암담하다. 첨단 업종을 집중 유치한다는 해운대구 ‘센텀2지구’ 개발 사업도 인근 아파트들의 부동산 호재 정도로 인식된다. 결국은 센텀2지구에도 주거단지가 적잖게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개발 사업이라면 일단 아파트부터 짓고 보기에 어쩌면 시민들의 이런 반응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 백화점이 사라지는 자리에 도시 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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