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응급환자 받아주는 병원 10곳 중 1곳… '뺑뺑이' 일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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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부족 주된 이유… 시민 생명 위협
병원 배정 조정 시스템 부활 검토할 만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하는 지난해 서울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인근에서 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하는 지난해 서울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인근에서 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의 응급의료 체계가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음이 수치로 확인됐다. 12일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올해 1~9월 부산에서 발생한 응급환자 3603건 가운데 병원 수용 여부를 타진한 문의는 무려 1만 5609회에 달했지만 실제 환자를 받겠다고 응답한 병원은 14.6%(2274회)에 그쳤다. 10곳에 문의해야 겨우 1곳 정도만 응급환자를 받아주는 것이 부산의 응급실 현실인 것이다. 이 같은 구조적 결함은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부산의 한 고교생이 응급실을 찾지 못해 구급차 안에서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시민이 가장 먼저 의지해야 할 응급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병원들이 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주된 이유는 의료진 부족(66.3%)이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아도 수술 집도나 진료를 이어갈 제대로 된 인력이 없다는 것이다. 지역 의료진 부족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환자실 부족(13.5%), 배후진료 불가(11.2%) 등 구조적 문제도 뒤따른다. 위장관출혈 환자가 평균 10곳 가까이 문의해야 하고, 의식장애 환자도 6곳 이상에서 거쳐야 겨우 병원을 찾을 수 있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심정지 환자마저 여러 번 거절당하는 상황은 부산의 응급의료체계가 이미 기능을 상실했음을 보여준다. 응급실 뺑뺑이의 일상화로 시민의 생명권이 위협받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방과 의료계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방은 “이송 병원 지정 권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의료계는 “의료사고 책임을 완화해야 환자를 받을 수 있다”고 맞선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동안 정작 가장 위험한 지점에 놓인 건 환자들이다. 양측 갈등 해결의 첫걸음은 책임 공방이 아니라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협력 구조를 복원하는 데 있다. 그래서 과거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처럼 의료진과 직접 연결해 병원 배정을 조정하던 시스템 부활도 검토할 만하다. 응급실 문턱에서 시민의 생명이 갈리는 일이 더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K 의료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정작 응급의료는 후퇴하고 있다. 응급환자가 병원 문을 찾지 못해 차 안에서 시간을 허비하거나 숨지는 비극적 상황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 의료체계 전체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 부산이 ‘응급실 뺑뺑이 도시’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역사회, 의료계, 소방당국이 한자리에 모여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정부나 지자체는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확충, 병상 운영 기준 현실화, 실시간 병상 정보 공유 시스템 정비 등 구조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 의료 인력 부족이 지속된다면 어떤 대책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국민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더 이상의 지체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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