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국민 식재료 ‘양산 계란’ 축제로 변신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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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양산에서 국내 첫 계란 축제 성공 개최
초대형 계란말이 커팅 등 다양한 콘텐츠
축제 정체성 전달 미비·진입로 개선 시급
지역 경제 연결 지속 가능 행사 진화 필요

기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 계란에 대해 웃지못할 추억이 하나 있다. 매일 친척이 운영하던 다방에서 병에 가득 담긴 귀한 계란을 집에 가져왔다. 이 계란에는 노른자가 없었다. 흰자만 있는 계란만 먹다 보니 노른자가 있는지 몰랐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밥을 먹었고, 노른자가 선명한 계란 반찬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귀가 후 ‘왜 우리 집 계란에 노른자가 없느냐’며 엄마에게 따지듯 물었다. 엄마는 웃으며 “다방에서 쌍화차를 만들 때 노른자를 사용하고 남은 흰자만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 것은 50여 년이 흐른 올해 10월 25~26일 양산 황산공원에서 계란을 주제로 한 ‘에그야 페스타’가 열렸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첫 시도된 계란 축제는 초대형 계란말이 커팅식과 유명 셰프들의 스페셜 쿠킹 쇼, 더 에그 배틀, 낙동강 라면, 세계 계란 요리 등 다양한 콘텐츠로 행사 기간 내내 대기 줄을 만들어낼 만큼 인기를 끌었다. 양산 지역 소상공인이 참여한 푸드 존은 준비한 식재료가 조기에 소진될 정도로 대박을 터트리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양산시가 통신사 유동 인구와 카드 매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타지역에서 2만 8000여 명을 포함한 최소 4만 6800여 명이 축제를 찾았다. 행사장 인근 라피에스타 등 증산신도시와 물금읍 원도심 상가 매출이 행사 직전 주말보다 36%가 증가한 42억 7000여만 원을 기록해 오랜만에 상인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방문객 규모에서는 김천의 김밥 축제(10월 25~26일)나 구미의 라면 축제(11월 7~9일)에 비해 뒤졌지만, 첫 행사에서 ‘방문객과 소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와 발전 가능성도 확인됐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축제 정체성인 ‘왜 양산에서 계란 축제를 개최하는지’가 방문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양산은 부울경 내 산란계를 사육하는 밀집 지역 중 한 곳이다. 올해 연간 3억 개 이상 계란을 판매하는 국내 최대 규모 업체의 본사도 양산에 있다. 양산은 계란 산업의 뿌리가 깊은 도시인 것이다.

계란 역사는 1970년으로 올라간다. 오경농장(현 젤란) 김중경 대표가 병아리 500여 마리를 사육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농가의 닭 사육은 흔했지만, 수백 마리 단위의 닭 사육은 처음이었다.

이후 김 대표 형제들과 이웃 농가들이 닭 사육에 앞다투어 뛰어들면서 상·하북을 중심으로 90여 농가가 210만 마리의 산란계를 기르기도 했다. 하루 평균 계란 생산량도 150만 개를 넘겼다. 수 년 전부터는 사육 환경 변화 등으로 인해 13개 농가에서 70만여 마리의 산란계가 사육 중이지만, 여전히 지역 핵심 산업 중 하나다.

행사장인 황산공원 진입로 개선은 시급하다. 행사 기간 황산공원 진입로는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았고, 일부 방문객은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양산시도 문제를 인식해 추가 진입로 개설을 추진 중이지만, 수백억 원대 예산 확보 문제 등으로 늦어지고 있다. 양산시는 4일 오후 물금읍에서 열리는 박완수 도지사와의 도민상생토크와 5일 국민의힘 경남도당 양산시 정책협의회에서 예산 지원을 각각 요청할 예정이다.

방문객 동원엔 성공했지만, 머물게 할 콘텐츠도 필요하다. 방문객의 60.5%가 외지인이라는 사실은 관객 동원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방문객이 소비하고, 지역을 둘러보고, 숙박까지 이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축제는 일회성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 경제와 직결된 체류형 축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1만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 한 계란은 단백질 등 필수 영양소를 갖춘 완전식품이다. 1950~60년대에는 손님이 오거나 생일, 제사 등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밥상에 오르지 않았다. 60~70년대는 닭고기와 돼지고기, 찹쌀과 함께 명절 선물이었을 정도로 귀했다. 현재는 K-푸드를 선도하고 있는 치킨이나 김밥, 라면 등 우리나라 음식 전반과 뛰어난 궁합으로 확장 가능성 역시 무궁무진하다.

먹거리 하나로 도시가 변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계란은 우리 음식 재료의 지존으로 단순한 식재료 그 이상이다. 정체성에 기반한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과 방문객을 체류시킬 수 있는 콘텐츠, 양산시, 지역 주민, 기업이 함께 할 때 계란 축제는 ‘스쳐 가는 행사’에서 ‘머물게 하는 행사’로, ‘지역 경제와 직결되는 지속 가능한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흰자만 맛보던 계란이 그랬듯, 양산 계란 축제 또한 아직 보여주지 않은 ‘노른자’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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