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파편의 시선-다다의 포토몽타주와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
미술평론가·철학박사
존 하트필드, 히틀러 경례의 의미. 베를린 예술아카데미 제공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 겨울의 초입, 인간의 이성은 여전히 시험대 위에 있다. 2025년 끝자락에서 우리는 기술의 속도에 비해 감정의 성숙이 더디고, 혐오와 폭력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다이스트들은 한 세기 전, 비슷한 질문 앞에 섰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태어난 그들은 아름다움보다 진실을 택했다. 세상과 문명의 파괴에 직면해, 그들은 그 파편들을 붙잡아 새로운 예술로 만들었다.
다다의 포토몽타주는 그런 절망의 시대가 낳은 급진적 시각 언어였다. 몽타주는 오려서 편집하는 기법이다. 신문과 잡지에서 잘라낸 얼굴과 문장, 병사의 팔다리, 광고 문구, 기계 부품 같은 조각들이 서로의 경계를 찢으며 낯선 충돌을 일으킨다. 이 이미지들은 조화로운 구성보다 균열과 단절의 리듬으로 세계의 불합리를 폭로했다. 한 장의 포토몽타주 안에는 파편화된 인간, 산업화된 전쟁, 그리고 언론의 선전이 뒤엉켜 있었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언어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다다는 해체를 통해 진실을 말하려 했다.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Verfremdungseffekt)는 이러한 다다의 실험을 연극의 언어로 옮긴 철학적 장치였다. 그는 관객이 무대 속 인물에 감정이입해 현실을 잊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극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면, 비판적 사고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로 완전히 변신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인물을 ‘보여준다’. 관객은 몰입 대신 사유하도록, 감동 대신 판단하도록 요구받는다. 무대는 현실을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구조를 드러내는 공간이 된다.
다다의 포토몽타주와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모두 감정의 이완 대신 인식의 긴장을 불러오는 예술이다. 하나는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다른 하나는 서사의 단절을 통해 세계의 이면을 드러낸다. 다다의 예술가가 신문과 광고의 파편을 붙여 현실의 위선을 폭로했다면, 브레히트는 연극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틈을 내어 그 속의 사회적 모순을 드러냈다. 둘 다 예술의 목적을 감동이 아니라 각성에 두었다.
오늘, 다시 불안과 분열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들의 예술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보고 있는 세계를 얼마나 낯설게 바라보고 있는가?” 다다가 현실을 해체함으로써 세계의 불합리를 드러냈듯, 브레히트는 무대의 환상을 해체함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일깨웠다. 그들의 예술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불편함을 통해 진실에 다가간다. 낯섦을 견디는 순간, 우리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오래된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