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멸종 위기 시대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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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자녀가 부모의 부담이 되는 시대
폐교 지역 출생아 되레 증가 눈길

그래도 사랑·삶 이어가려는 사람들
계산보다 마음에 기댄 결심 늘어나

예전과 다른 방식 사랑도 증가세
애정 소멸 아닌 재편·확장하는 듯

‘한 사람당 하나의/사랑이 있었대/내일이면/인류가 잃어버릴/멸종위기 사랑.’

11월 27일자 부산일보 뉴스레터 B-read(브레드)를 읽다가 문득 떠오른 노래 가사다. 악동뮤지션 이찬혁의 노래 ‘멸종위기 사랑’의 한 대목이다. 떠올린 이유는 단순했다. 올해와 내년에만 부산에서 초등학교 5곳의 폐교가 확정됐다는 기사와 같은 지역에서 출생아 수 증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기사가 공교롭게도 나란히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댓글 중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은 “사실 우리는 사랑 하나면 되는데”였다. 노래를 만든 이찬혁 역시 사랑이 사라진 시대를 노래하는 듯하지만, 실은 그만큼 많은 이들이 사랑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대로 드러낸다. 폐교 소식과 출생 증가라는 상반된 두 기사를 마주하니, 사랑이 사라졌다는 말과 사랑을 찾으려는 마음이 동시에 교차하는 이 노래의 정서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한 시사 라디오에서 요즘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과거 가족중심 농경사회에서의 ‘자녀’란 노동력으로 환산되는 생산재였다면, 현재는 소비재에 가깝다”고 말했다. 직설적이지만 많은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은 발언이었다. 자녀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제공해야 하는 시대에서 자라난 우리는, 그 부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계산을 해보면 출산과 육아가 ‘이득’이라고 보긴 어려운 현실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것이다.

폐교와 출생 증가라는 서로 다른 곡선을 보며 ‘가능성’이라는 말을 꺼내는 건 분명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지표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만약 사랑이 완전히 멸종된 시대라면, 출생 지표의 작은 반등조차 나타나기 어렵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책임지고자 하고, 삶을 이어가려 하고, 계산보다 마음에 기대어 선택하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이 시대의 ‘가능성’은 그 작은 결심들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눈에 보이는 숫자로 표현되는 순간은 많지 않다. 연말연시마다 들려오는 유명인의 기부 소식은 익숙하지만, 정작 일상 속에서 꾸준히 발휘되는 작은 사랑들은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출산율이 지역 단위에서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소식이 더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계산으로는 결코 ‘득’이 아닐지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미래에 희망을 거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숨통을 트이게 하는 기분이다.

사실 결혼이나 출산은 ‘사랑’을 좁게 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는 전통적인 지표에 담기지 않는 다양한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혈연으로 얽히지 않아도 서로를 돌보며 한 집에서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2022년 기준 전체 일반 가구의 2.4%인 약 110만 명이 비친족 가구에 속한다. 2021년 대비 증가율은 8.7%로, 같은 기간 1인 가구 증가율(4.7%)보다 높다. 버려진 동물을 입양해 작은 생명을 살리는 개인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2024년 반려동물 양육 가구 비율은 전체의 28.6%로 증가하고 있다. 공식 조사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가족의 대체나 확장 형태’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감소추세를 보이긴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입양을 통해 책임과 연대를 택하는 보호자도 있다.

사회학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돌봄의 재구성’으로 설명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돌봄은 더 이상 가족 내부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며, 공동체나 비친족 관계·지역 네트워크가 돌봄의 새로운 축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사랑이 멸종된 것이 아니라, 책임과 애정이 향하는 방향이 시대에 맞게 다양해지고 있다는 분석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는 사랑의 재편, 그리고 사랑의 확장으로 읽을 수 있다.

멸종 위기라는 말은 사랑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경제적 효율성을 최우선하는 시대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계산되지 않는 선택’을 하며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넨다. 이것이야말로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내구성일 것이다.

내년 3월 통합으로 문을 닫게 될 부산 영도구의 신선초와 남항초, 사상구의 괘법초, 영도구의 봉삼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그곳에서 아이들이 배우고 나누었던 ‘사랑을 배우는 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세대가 그 자리에 서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며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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