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권 기반 운영·지역별 맞춤 설계 필요” [도시 부활, 세계에서 길 찾다]
⑦ ‘부산형 도시 살리기’ 해법은?
벨기에 겐트 일곱개 생활권 구분
부산 상권에도 적용 가능성 높아
워케이션 통해 장기 체류 유도를
전통 상점 보호·인재 유턴 필요해
보수동 책방골목과 국제시장, 자갈치 등 부산 원도심 일대의 오래된 상점과 장인 공방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내 ‘우리글방’(왼쪽)과 복합문화공간 ‘아테네 학당’(가운데 아래).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한 중구 자갈치시장(오른쪽 위)과 가게들이 늘어선 중구 국제시장 내 상가 골목. 부산일보 DB
인구 유출, 원도심 상권 침체 등이 부산의 지역 문제로 대두되면서 해외 도시들이 생활권 단위 자율 운영, 전통 상점 보호, 디자인 기반 도시 재생 등을 통해 위기를 돌파한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겐트·포르투·하코다테·올랜도·클리블랜드 등 각 도시의 전략을 바탕으로 ‘부산형 도시 재생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상권 침체와 인구 유출이라는 공통된 위기를 겪은 도시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생력을 키워 온 만큼, 부산도 이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벨기에 겐트는 도심을 일곱 개 생활권으로 구분하고, 각 구역 상인 조직이 상권 운영을 주도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시는 제도와 예산을 뒷받침하고, 상인들은 축제·조명·홍보 전략 등 세부 기획을 스스로 결정한다. 개별 점포 지원을 넘어 생활권 전체의 정체성과 개성을 살리는 방식이다.
이 모델은 부산에서도 적용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포·남포·서면·해운대·부산대 일대 등은 생활권별 특성이 뚜렷해 기능 중심 상권 재편에 적합하다는 분석이다. 상인 조직과 전문가, 시가 함께 참여하는 생활권 협의체를 꾸리고, 연간 예산을 생활권별로 배분해 축제·홍보·환경 개선 사업을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포르투갈 포르투는 전통 상점 보호에 집중했다. 임대료 급등으로 오랜 상점이 사라지는 문제에 대응해 ‘포르투 데 트라디상’ 제도를 도입했다. 역사·문화적 가치를 갖는 상점을 지정하고, 리모델링 비용 지원, 디지털 홍보, 온라인 판매 시스템 구축 등 실질적 지원을 제공한다. 단순 보존이 아니라 전통 상점을 경쟁력 있는 로컬 브랜드로 키우는 전략이다.
부산에서도 보수동, 국제시장, 자갈치 등 원도심 일대의 오래된 상점과 장인 공방을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는 상생 협약, 재산세 감면 등을 묶은 전통 상점 보호 체계를 마련하면 도시 정체성과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지방 도시들이 선택한 인재 확보 전략도 눈여겨볼 사례다. 홋카이도 하코다테시는 코로나 시기 워케이션 사업을 기업 유치 중심 정책에서 이주 정책으로 전환했다. 단기 체류가 장기 거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체류 기반 지원을 강화했다.
부산도 워케이션을 단순 관광 콘텐츠가 아닌 장기 체류의 전 단계로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여행객 재방문율이 높은 도시라는 장점을 살려, 해운대·광안리·영도 등 지역별 특성을 활용한 원격근무자 거점, 장기 체류형 주거 모델, 공유오피스 기반의 인재 유치 전략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미국 올랜도와 클리블랜드의 도시재생 모델도 참고할 수 있다. 올랜도 동부의 밀크 디스트릭트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낙후된 산업시설이 흩어져 있던 변두리 지역이었다. 그러나 시의 ‘메인 스트리트’ 프로그램을 계기로 외관 개선 보조금 지원, 보행자 중심 거리 조성 등이 추진되면서 카페·양조장·갤러리 등이 들어섰고, 지역 전체가 로컬 문화 중심지로 재탄생했다. 간판 교체, 야외 테라스 설치, 자전거 랙 조성 등 보행자 중심 도시 설계는 보행량 증가로 이어졌고, 2016년 이후 120개 이상의 신규 사업체가 생겨났다. 소상공인·예술가·주민이 함께 만든 축제가 관광객 유입과 매출 증가로 연결되면서, 이 지역은 지금은 올랜도 관광산업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클리블랜드의 리틀 이탈리아는 또 다른 형태의 재생 모델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공동체가 모인 지역으로, 개발 압력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키며 성장해 왔다. 신축 건물의 높이와 형태, 색감까지 규율하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장치가 됐다.
부산에서도 밀크 디스트릭트처럼 디자인 기반 도시 재생 전략을 적용해 볼 수 있다. 거리 아트와 간판 정비, 보행 중심 동선 개선, 건물 외관 개선 등을 패키지로 묶어 소규모 구역부터 집중 적용하면 상권 활력과 지역 브랜드 형성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리틀 이탈리아 모델은 국제시장·보수동 책방골목·원도심 등 역사적 맥락을 가진 지역에 적합하다는 분석도 있다. 개발 압력과 정체성 유지 요구가 공존하는 지역일수록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디자인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외 전문가들은 생활권 기반 자율 운영, 전통 상점 보호, 인재 유턴 전략, 디자인 중심 도시 재생을 지역별로 맞게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끝-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