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네마로 만난 독특한 핀란드 명작 ‘사랑은 낙엽을 타고’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컷. 찬란 제공
영화를 사랑하는 <부산일보> 독자를 극장으로 초대하는 ‘BNK부산은행과 함께하는 부일시네마’(이하 부일시네마) 시즌2 일곱 번째 상영회가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25일 오후 7시 부산 중구 신창동 ‘모퉁이극장’에 모인 관객 60여 명은 핀란드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2023)를 관람했다.
제76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핀란드 헬싱키에 사는 두 외로운 남녀가 우연히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시네필 사이에서 영화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 소문난 소지섭의 ‘51K’가 배급사 ‘찬란’과 함께 수입한 영화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포스터. 찬란 제공
주인공들은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트에서 일하는 여자는 사실상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고,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도 술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둘은 우연히 마주쳐 호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서로의 이름도 주소도 알지 못한 채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까지 잃어버린다.
영화는 서로 이어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조금씩 연결되는 과정을 건조하지만 재치 있게 풀어냈다. 특유의 묘한 매력은 영화를 봐야만 느낄 수 있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포스터. 찬란 제공
이 작품은 보통의 로맨스물과는 다른 문법을 취한다. 과장된 설정의 캐릭터와 애틋한 표정 연기,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무미건조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탓에 모순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예컨대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의 표정이 밋밋하기 그지 없고, 사랑을 고백 받은 여자의 표정에서도 생기라곤 찾을 수 없다. 다른 등장인물들도 시종일관 무표정이고, 사건의 전개와 흐름에서도 딱 필요한 요소만 보여준다. 요리로 치자면 기름기를 쫙 뺀 음식이다. 담백함을 넘어 바싹 마른 낙엽을 씹는 것만 같다.
그러나 마냥 싱겁고 밋밋한 맛은 아니다. 묘하게 빨아들이는 맛이 있어 자꾸만 먹게 되는 핑거 푸드처럼, 관객은 두 주인공의 만남과 연결을 응원하게 되고, 별 것 없는 스토리에 빠져들게 된다. B급 감성을 자극하는 최소한의 연출로도 몰입을 유발하는 감독의 영리함이 돋보인다.
영상미와 유머도 제법이다. 보색과 대칭을 적극 활용하는 미장센에 자꾸만 눈길이 가고, 툭툭 내뱉는 허튼 소리들이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한다. 이날 모퉁이극장에 모인 관객들 사이에선 쉼 없이 웃음 소리가 나왔다. 극장에서만 가능한 공동경험 덕에 색다른 유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상영 뒤에는 관객끼리 감상을 공유하는 시간인 ‘커뮤니티 시네마’가 진행됐다. 광안리 소재 예술공간인 ‘아트살롱샘’의 이다정 대표가 모더레이터로 나섰다. 이 대표는 “과장되지 않은 감정 표현과 절제된 유머, 덤덤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연출이 좋았다. 삶의 방식에 대해 조용하게 사유하게 하는 영화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핀란드 헬싱키에 가본 적이 있다. 처음 가봤던 북유럽 나라인데, 그때 느낀 독특한 정서가 영화에 녹아있다”고 부연했다.
이 대표가 먼저 소통을 유도하자 관객들은 제각기 소감을 공유했다. 한 관객은 “모처럼 외출이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객의 “밑도 끝도 없는 영화 같다. 절주 캠페인 같기도 하다”는 솔직한 평은 다른 이들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다음은 관객들의 감상평.
“원래 영화관에 가면 늘 자곤 했는데 이 영화는 재밌게 잘 봤다.”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힘이 사랑에서 나온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남편과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는 참 좋아하는데, 핀란드 영화는 처음 봤다. 색채와 음악이 독특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
“미국의 화끈한 사랑과 대비되는 담담한 사랑이 인상적이다. 잔잔하고 은근한 사랑 표현 잘 봤다.”
“이게 뭐지 싶은데 계속 보게 됐다. 이런 형식의 영화는 처음 본다. 로맨스 영화인데 건조하고, 그러면서도 보색을 활용한 색채가 화려하다.”
관객 평을 들은 이 대표는 영화 속 주인공이 변화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언급하며 철학가 들뢰즈가 주창한 삶의 태도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는 유목주의와 탈주에 대해 설명한 그는 “저도 작년까지 중·고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16년 정도 일했는데,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예술 활동을 하고 싶어서 의원 면직한 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객들에게도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자고 독려했다.
한편 이날 커뮤니티 시네마가 마무리된 뒤 인상적인 소감을 남긴 관객 5명에겐 랜덤 포스터가 경품으로 지급됐다.
부일시네마는 부산닷컴(busan.com) 문화 이벤트 공간인 ‘해피존플러스’(hzplus.busan.com)에서 관람을 신청한다. 참가자를 추첨해 입장권(1인 2장)을 준다.
오는 12월 상영작은 제71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행복한 라짜로’(2018)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