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좋은 공동체가 넘치는 행복한 도시,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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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헌 영산대학교 관광컨벤션학과 교수

“요즘 참 밝아 보인다.” 최근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아마도 매일 새벽 운동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진정으로 환하게 하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함께 어울려 땀을 닦고, 웃음을 나누며 서로의 등을 토닥이는 사람들의 온기, 바로 공동체의 따뜻한 힘 덕분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공동체가 낯설고 어려웠던 사람이다. 40년이 넘는 긴 직장 생활 동안 나는 15번 넘게 이사를 다녔고, 그때마다 지역의 테니스장을 찾았다. 하지만 낯선 곳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존 회원들의 텃세 문화 속에서 나는 늘 외톨이였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기에 끼워주지 않거나, 소외감에 결국 포기하고 돌아선 적도 많았다. 나는 늘 공동체의 주변을 맴도는 영원한 초보 신세였다.

그러던 중, 지금 살고 있는 부산에서 내게 뜻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바로 외진 반송마을의 시니어 테니스클럽이다. 60대부터 80대까지, 삶의 무게를 묵묵히 이겨낸 30여 명의 노년층들이 주축을 이룬 모임이다. 처음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 ‘우리 후배가 왔다’며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반갑게 끌어안아 주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경쟁 대신 환대가, 텃세 대신 따뜻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 따뜻한 포옹 덕분에 나는 1년 만에 이 공동체의 중심에 굳건히 뿌리내리며 초보를 면할 수 있었다.

이 모임은 단순한 운동 클럽을 넘어섰다. 이 공동체의 회장은 공을 치는 일보다 코트 주변을 쓸고, 낙엽을 치우는 일에 더 열심이다. 총무는 회원들의 경조사를 내 일처럼 챙기고, 테니스를 잘 치는 경기이사는 나 같은 초보자에게 무료로 레슨을 해준다. 서로 가져온 간식을 나누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서로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리며 격려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경쟁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섬김과 배려, 책임과 나눔이라는 소중한 가치들이 살아 숨 쉬는 풍경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정(情) 문화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꽃피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진짜 맛을 배운다. 이웃을 보듬고, 함께 웃으며, 나이와 직업, 사회적 배경을 넘어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을 매일매일 확인한다. 은퇴 후 굳이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이 따뜻한 부산 공동체와 함께 인생의 다음 장을 열어가고 싶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만약 이처럼 따뜻하고 끈끈한 공동체가 우리 사회의 골목마다, 마을마다, 학교와 직장 속에 널리 퍼진다면,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얼마나 달라질까. 나는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고 믿는다. 수많은 제도와 정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에서 시작된다. 서로에게 먼저 미소 짓고 인사하고, 서로의 안부를 챙기며, 작은 것을 나누는 일상의 작은 실천들이 모여 견고한 공동체를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 부산이 진정으로 아름답고 강한 도시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거창한 구호나 웅장한 계획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책임을 다하고, 자신의 욕심을 조금 비우며, 이웃에게 친절과 따뜻함을 건네는 시민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오랜 세월 지탱해 온 전통적인 예절과 훈훈한 정(情)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만약 이러한 공동체가 우리 사회 곳곳에 살아 숨 쉰다면, ‘노인과 바다’라는 부산에서 우리는 더 이상 외로움에 몸서리치지 않을 것이다. 이웃의 존재는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서로의 어깨를 기대며 함께하는 행복은 넘치고, 모든 사람이 살고 싶은 곳으로 변모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경쟁력 있는 행복 도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굳게 믿는다. 행복한 도시는 결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곁의 이웃에게 먼저 건네는 작은 친절, 그리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따뜻한 공동체에서 시작되는, 우리 모두가 만들고 함께 누릴 수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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