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항소 포기 반발' 징계설에 검찰 내부 “길들이기”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정부, 검사장 18명 평검사 전보 검토
일선 검사들 내부망 통해 비판 목소리
"납득할 수 없는 지시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리적 의심 제기 공무원들 대상 겁박"

정성호 법무부장관이 17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전국 보호기관장 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정성호 법무부장관이 17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전국 보호기관장 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대검찰청으로 첫 출근하는 구자현 신임 대검찰청 차장검사. 연합뉴스 17일 대검찰청으로 첫 출근하는 구자현 신임 대검찰청 차장검사. 연합뉴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던 전국 검사장들을 평검사로 전보하는 징계가 검토되자 검사장의 사퇴가 잇따르는 등 검찰의 반발이 다시 격해지고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검찰 내부 동요는 심화하는 모양새다. 검찰 내부에선 “설명 요구를 항명으로 둔갑한 검찰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통령실과 법무부 등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에 반발해 입장문을 낸 검사장 18명을 평검사로 전보 조치하는 징계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진 부산지검장을 포함한 일선 검사장들이 노만석 당시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항소 포기 배경을 설명하라고 요구하며 입장문을 발표한 걸 ‘집단 항명’으로 여긴 셈이다.

일선 검사들은 즉각 반발하고 있다. 17일 박재억 수원지검장과 송강 광주고검장은 법무부에 사의를 표명했다. 박 지검장과 송 고검장은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과 사법연수원 29기로 동기다. 박 지검장은 일선 검사장 18명 중 최선임으로, 검찰 내부 게시판에 노 전 권한대행에게 항소 포기 지시에 이른 경위와 법리적 근거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 바 있다. 법무부가 검사에 대한 인사 조처를 검토하자 이들이 후배 검사장들을 대표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박철완 부산지검 부장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망에 “검사의 정당한 의사 표시를 위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며 “지금은 노 전 대행이 왜 통례에 반해 절대다수 검사로서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항소 포기 지시를 했는지 확인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비판했다.

공봉숙 서울고검 공판검사도 이날 검찰 내부망을 통해 “업무상으로 위법 또는 부당해 보이는 상황에 대해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공무원들에게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왜 시끄럽게 떠드느냐’고 징계하고, 형사 처벌을 하고, 강등을 시키겠다고 한다”며 “다수의 정치인이 대놓고 저런 어처구니없는 겁박을 하고, 현실화할 법을 만들겠다고 눈을 부라리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검사장들에 대한 징계 검토를 고민하고 있다고 시인한 상태다. 정 장관은 17일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 “어떤 게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평검사 전보는 사실상 강등이라는 내부 반발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특별히 그런 움직임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대응했다.

검사장 평검사 전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선 ‘직급 강등’이라며 비판하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 강등이나 징계로 볼 수 없단 입장이다. 검찰청법 6조에 따르면 검사 직급은 검찰총장과 검사 두 종류로 구분되지만, 통상적으로 검사장·고검장 급은 별도로 구분된 대검 검사급 보직을 맡곤 했다. 법무부는 관례일 뿐 강제력 있는 법률이나 시행령으로 구속된 건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검사장이 오랜 기간 직급으로 인식된 만큼 법무부가 전보 인사를 단행하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사장들 징계 실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내부 반발을 고려하면 법무부가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라며 “대검 감찰을 먼저 하는 방식으로 전보나 징계 명분을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게 된 구자현 신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정식 업무가 시작된 17일 오후 정 장관을 예방했다. 그는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말씀 나누고 인사드리고 나오겠다”고 말했지만, 검사장들 징계 논의를 할 예정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따로 답변하지 않았다. 구 대행은 이날 오전 9시께 서울 서초구 대검 청사로 침묵을 지킨 채 출근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