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하는 공간·기억의 잔향 따라 삶의 의미를 묻다
부산일보 신춘문예 출신
오선영 작가 <스페이스 월드>
8편 단편 모은 세 번째 소설집
머물고 떠나는 숱한 장소들
인간 내면·감정 섬세하게 포착
오선영 작가가 세 번째 소설집 <스페이스 월드>를 소개하고 있다. 김효정 기자
깔깔거리고 웃다가 연신 “맞네” “그러네”라는 공감의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오랜만에 유쾌한 느낌으로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소설집을 만났다. 8편의 단편이 담긴 책은 몇 시간 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만큼 매력 넘친다.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부산에서 꾸준히 작품을 선보인 오선영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스페이스 월드>다.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궁금한 점이 많다는 말을 듣고, 설레고 한편으론 부담스러웠어요. 내가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단아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오 작가는 작품에 관한 인터뷰를 시작하자 눈을 반짝이며 소녀처럼 들뜬 표정으로 변한다.
소설집의 첫 작품 ‘어니언마켓’은 소도시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상의 중고 거래 앱 ‘어니언마켓’의 구매 목록, 판매 목록은 이용자의 생활과 욕망을 그대로 투영한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신축과 구축 아파트 주민들의 불편한 관계, 중고 거래 앱을 통해 판 자신의 물건이 몇 배 더 비싼 가격으로 다시 판매 목록에 나오며 생기는 이웃 사이의 오해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요즘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지역 기반 중고 거래 앱을 떠오르게 한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듯싶다. 모든 게 디지털화되며 타인이 온라인 활동을 통해 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두렵게 느껴진다. 이런 느낌을 오 작가는 ‘온라인 너머 형체를 알 수 없는 많은 눈이 쏟아진다’라고 표현했다.
‘카페인 랩소디’는 부산 출신 청년 민우가 서울에 취직하며 겪는 사건을 그렸다. 지방 출신이라는 낙인, 서울의 비싼 생활비와 부산에 남아 있는 연인과의 갈등이 오늘날 청년 세대의 고단함을 드러낸다.
‘발령의 조건’은 부산으로 발령이 난 부부가 집을 알아보기 위해 기차를 타며 나누는 이야기이다. ‘부산 발령=좌천’이라고 생각하는 부부는 집값이나 생활비가 서울보다 저렴해 생활 수준이 오를 것이라며 ‘정신 승리’를 한다. 하지만 부산도 학군 좋고 환경 좋고 유명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는 부부의 경제 상태로 어렵다는 걸 깨달으며 절망한다. 오 작가는 “‘발령의 조건’은 결론을 쓰며 통쾌한 기분이 좀 들었다”라고 말했다. 한국 제2의 도시라지만, 부산과 서울의 격차가 크다고 생각해 온 많은 이들에게 지역 작가로서 제대로 한 방 먹인 것 같다.
오선영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스페이스 월드>.
‘안평’과 ‘스페이스 월드’는 다른 소설이지만, 연달아 배치해 연작처럼 읽힌다. ‘안평’은 보증금 사기를 당한 선주가 친구 아버지가 투자 목적으로 사둔 구옥에 머무르며 겪는 일을 통해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을 보여준다. ‘집’은 거주 공간을 넘어 권력과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는 걸 말하고 있다. ‘스페이스 월드’는 안평에서 함께 자란 은경과 주현이 학창 시절 함께 가자고 약속했던, 일본의 우주 테마파크 ‘스페이스 월드’에 방문하지만, 그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쇼핑몰이 들어서 있는 걸 발견하는 내용이다. 재개발을 앞둔 안평, 사라진 장소 스페이스 월드가 중첩되며 소멸하는 장소가 전하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아직 오지 않은 말’과 ‘유치보관함’ ‘임시보호자’는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기존 가족의 정의와 제도를 넘어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팝콘처럼 통통 튀는 앞쪽 소설과 달리 뒤쪽 3편은 독자에게 진지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오 작가는 여전히 펜으로 아이디어를 적고 소설의 전체 구성과 줄거리를 직접 쓴다. 매끄럽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걸 지향한다. 여러 해석의 여지를 숨겨둔 채 이야기를 엮는 솜씨도 뛰어나다.
<스페이스 월드>는 앞서 발표한 두 번째 소설집 <호텔 해운대>와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실제로 <호텔 해운대>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미래 모습이 겹쳐지는 지점도 있다. <호텔 해운대>를 먼저 읽고 <스페이스 월드>로 넘어가면 읽는 재미가 배로 늘어난다.
<스페이스 월드>에 앞서 나왔던 오선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호텔 해운대>.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