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잠자던 무인도 '보전' 넘어 '활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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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철 무인도섬테마연구소 대표

생태계의 마지막 보루이자 안식처
한국 해양력 떠받치는 국가 전략 거점
가능성 품은 핵심 자원으로 재조명
국민과 함께 가치 확장 새 접근 필요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는 해양수산부가 관리하는 무인도서가 2910개 있다. 480개의 유인도를 포함해 모두 3390개의 섬 가운데 86%를 차지하는 규모다. 전국 곳곳에 흩어진 이 무인도서는 각기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단순히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을 넘어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다채롭다.

먼저 국가 영토 주권 측면에서 무인도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영해를 설정하는 23개 영해기점 가운데 13개가 무인도서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육지 면적의 4.4배에 이르는 해양 관할권을 확정하는 핵심 기반이 된다. 이러한 무인도서가 없다면 우리 해양 영토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생태적 측면에서도 무인도서의 가치는 매우 크다. 고립된 환경 덕분에 무인도서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멸종위기 야생생물과 천연기념물의 서식지이며 고유 식물의 자생지이자 희귀 조류의 산란지 역할도 한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무인도서들은 말 그대로 다양한 생물종의 마지막 보루이자 낙원이며 안식처인 셈이다.

관광 자원으로서의 잠재적 가치 또한 주목할 만하다.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과 고유한 생태계는 지속가능한 해양관광 혹은 생태관광의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무인도서가 수려한 경관과 독특한 지질학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어 관광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무인도서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보전하기 위해 해양수산부는 체계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2007년 제1차 무인도서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현재는 제2차 실태조사(8차년도)가 진행 중이다. 전남대학교 무인도서연구센터가 주관하며, 인문·사회, 지형·지질·경관, 식생, 식물상, 육상동물, 해안무척추동물, 해조류 등 생물상, 수질, 시설물, 해양쓰레기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조사한다. 매년 300여 개의 무인도서를 직접 방문해 영상 촬영부터 보고서 제작까지 실태조사의 전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는 무인도서의 관리 유형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보전 가치에 따라 절대보전(출입 자체를 제한해야 하는 지역), 준보전(일정 행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는 지역), 이용가능(훼손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에서 출입과 활동이 허용되는 지역), 개발가능(조건부 개발이 가능한 지역) 등 네 가지 유형으로 지정되며, 이러한 분류는 무인도서를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반이 된다.

관리 기반 구축과 더불어 해양수산부는 무인도서의 숨은 가치와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2017년부터는 매월 ‘이달의 무인도서’를 선정해 생태·지질·환경은 물론 문화, 역사, 인문·지리적 스토리까지 소개하고 있다. 2021년에는 최초로 ‘무인도서 백서’를 발간했고, 2022년에는 생태·경관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가 높은 100곳을 선별해 ‘무인도서 100선’을 펴냈다. 나아가 이러한 정보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무인도서 종합정보제공’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해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2024년부터는 무인도서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한 ‘무인도 LIVE’ 캠페인도 추진하고 있다. ‘무인도 재발견, 나와 대한민국이 더 커집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국민이 직접 무인도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무인도서를 직접 방문해 그 가치와 소중함을 체감하도록 하는 교육적 성격의 캠페인이다. 전국 공모로 선발된 참가자들이 무인도서의 안보·생태·관광적 가치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함으로써 올바른 이용과 가치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무인도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정책 방향을 기존의 ‘보전’ 중심에서 ‘보전과 활용의 조화’로 확대했으며, 2020년에 수립된 ‘제2차 무인도서 종합관리계획(2020~2029)’에서는 ‘자연과 사람, 건강과 활력이 넘치는 무인도서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정책 전환의 핵심은 무분별한 개발이 아닌 보전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활용이다.

무인도서는 더 이상 외딴섬이 아니라 대한민국 해양력의 중심을 떠받치는 전략적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양한 생물의 피난처이자 생태적 보고라는 본래의 가치에 더해,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핵심 자원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던 시대를 넘어섰다. 보전의 원칙을 확고히 하되, 국민과 함께 그 가치를 체감하고 확장해 나가는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보전과 활용의 조화’라는 정책 전환은 이러한 흐름에 힘을 보태며 무인도서의 확장성을 한층 넓혀 주고 있다. 우리가 무인도서의 잠재력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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