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핵추진잠수함, 우라늄 농축·재처리 후속 절차 잘 진행해야
실제 실행 위해선 법적·기술적 장벽 남아
추가 협의 등 과정서 정교한 전략 요구돼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 관세협상 팩트시트 및 MOU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안보 협상 합의 내용을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발표되고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가 서명되면서 그동안 짙게 드리웠던 관세·안보 불확실성은 큰 틀에서 걷혔다.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부품 관세와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고,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추진하기로 명문화했다. 관세·안보 협상은 사실상 일단락됐지만, 합의문 곳곳에 적시된 후속 절차와 난제를 고려하면 지금은 축포를 터뜨릴 때가 아니다. 특히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 우라늄 농축·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허용 문제는 향후 한국 외교·안보의 민감한 과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합의는 큰 진전이지만 진짜 시험대는 이제부터다.
한미 양국이 지난 14일 발표한 팩트시트에는 미국이 한국의 핵잠 건조를 승인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미 해군 함정의 국내 건조 가능성까지 언급돼 조선·방산 분야 협력 지평 확대도 기대된다. 하지만 실제 실행을 위해서는 법적·기술적 장벽이 만만치 않다. 핵연료 공급을 받으려면 군수품과 방위 관련 기술의 해외 이전을 제한하는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완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호주 역시 유사 협상에 수년이 소요된 바 있다. 국내 건조를 전제로 하지만 핵연료 없이는 핵잠 운용이 불가해 협상 난도가 높다. 결국 실질적 성과는 세심한 후속 협상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한미 양국은 팩트시트를 통해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절차를 지지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방향 합의’와 ‘실행 가능’은 별개다.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검증과 미국 의회의 승인 등 국제적 승인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결국 미국의 경계심과 정치적 변수에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미국은 한국의 과거 핵 개발 시도에 대한 경계심을 여전히 품고 있다. 후속 협의가 험난함을 예고한다. 그만큼 기술적·제도적 보완책 마련과 신뢰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제 중요한 건 후속 절차를 얼마나 치밀하게 관리하느냐다. 합의문을 낙관적으로 해석하기보다 ‘모든 가능성에 대비한 관리 전략’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핵잠 도입의 기술적·법적 절차,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문제를 둘러싼 미 의회 비준 가능성 등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아서다. 중국의 민감한 반응도 세심히 관리해야 한다. 주한 중국대사가 우려를 표명한 것은 단순 제스처가 아니다. 합의 이행 과정에서 중국의 오해를 최소화하고 외교적 긴장을 조율하는 정교함이 요구된다. 이번 합의의 진정한 의미는 후속 협상의 무게를 일깨웠다는 데 있다. 핵잠과 핵주기 기술 관련 민감한 절차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되 국제 신뢰를 지키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세밀한 대응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