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죽음의 외주화, 수사의 외주화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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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화력발전소 붕괴사고 원인은
위험을 하청에 아웃소싱하는 관행

특검만 난립하고 검찰은 항소 포기
수사도 하청주는 행태라 여길 밖에

해수부 이전으로 훈풍 탄 여권 지지
법치주의에 대한 의구심 가라앉혀야

6일 오후 울산 동서발전 화력발전소에서 63m 높이의 낡은 보일러 타워가 무너졌다. 타워 내부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9명이 순식간에 잔해 속으로 사라졌다.

무분별한 하청 남발이 불러온 참담한 사고다. 노후 산단이 많은 울산에서는 위험한 해체 작업은 곧장 하청 업체로 향하는 게 하나의 관행이 됐다. 일감을 따낸 업체는 더 영세한 업체에 그 일을 던진다. 결국 ‘죽음마저 외주 줬다’라는 게 현장 기자의 보고다.

위험한 작업이라면 감리를 둬서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힘든 작업이라면 근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그게 근로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그러나 이 예의와 상식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게 하청의 악순환이다. 위험천만한 일터에 헐값으로 밀어 넣을 일용직이 존재하는 한 기업이 자발적으로 근로 환경을 개선할 날은 오지 않는다.

이번 사고에 희생된 이들은 하도급 업체 직원 1명과 일용직 8명이다. 해체 작업에 능한 기능공은 없었다. 인력사무소 소개로 출근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던 젊은 가장이 가장 먼저 시신으로 발견됐다. 힘들게 구직에 성공해 출근할 날만 기다리던 이다. 정식 출근 전 몇 푼이라도 더 벌 요량으로 그가 찾아간 새벽 알바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발파 현장이었다.

울산에서 보일러 타워의 잔해에 파묻힌 매몰자를 구해낸다고 정신없는 사이 서울에서는 검란의 불길이 번졌다. 대선 정국을 뒤흔든 대장동 사건의 항소를 검찰 수뇌부가 포기했다. 내부 반발은 당연지사다.

이번 항소 포기로 허공에 뜬 범죄수익만 7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범죄 수익으로 추징하는 길이 사실상 막혔다. 성남시는 민간사업자를 가장한 도둑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민사 소송을 벌여 손해배상을 받아내야 한다. 형사 재판이 저 지경이 됐는데 민사라고 순탄하게 흘러갈까. 당장 자신의 몫 500억 원을 보전 당한 민간업자 남욱 씨는 서울중앙지검을 상대로 국가배상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울산에서는 절박한 가장들이 일당 35만 원짜리 기능공 대신 15만 원짜리 ‘핫바리’가 되어 돌아올 수 없는 철골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반면 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은 송사만 마치고 나오면 돈방석에 앉을 판이다.

법무부 장관은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보고에 수 차례 ‘신중한 판단’을 권했다. 정권 초기 그 말의 무게를 장관씩이나 되는 인사가 과연 몰랐을까. 붕괴 사고의 발주처가 동서발전이듯 검란의 발주처는 명백히 대통령실이다.

발주처와 원청이 불화를 겪는 사이 하청이 난립하며 대목을 맞았다. 온갖 타이틀이 붙은 시국 사건은 줄줄이 특검의 몫이다. 특검이라는 단어가 공정함과 준엄함을 상징하던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 이 특검이 저 특검인지, 저 특검이 이 특검인지 헛갈리는 사이 이력 모를 율사가 나타나 수사권의 칼을 쥐고 망나니 춤을 춘다.

급기야 부도 위기의 하청 업체인 공수처는 후발 업체인 해병대 특검으로부터 외압 의혹까지 제기당하는 굴욕도 맛봤다. 양산된 특검을 정권의 손쉬운 수사 하청이라며 다들 혀를 차는 이유다.

전인미답의 코스피 4000시대를 열고 한미 무역협상에서 핵추진 잠수함까지 얻어낸 여권이다. 정치적 호재는 봄바람처럼 이어진다.

부산에서도 바닥을 치던 여당의 지지세는 해양수산부 이전 급물살에 꿈틀댄다. 소주 한 잔 기울이는 자리마다 ‘내년 지방 선거는 그야말로 다이내믹’이라며 다들 장자방 행세를 하기 바쁘다. 본청에 이어 산하기관과 HMM의 구체적인 이전안까지 꺼내 놓는다면 지금의 기세는 우스울 정도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화한 검란을 무사히 수습한다는 전제조건 하의 이야기다. 잘 나가다도 검찰 이슈만 터지면 발작 버튼이라도 누른 듯 역선택에 역선택을 거듭하는 대통령실과 여당 모습에 부울경 유권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물론, 수습되지 않은 대장동의 잔해가 여권 입장에서는 두려울 법도 하다. 재판 과정에서 그 속에서 무엇이 더 튀어나올지는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특검의 수사는 난립하고 있는데 정작 검찰의 대장동 수사는 올스톱된 이 상황이 결코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청 놀음이 존재하는 한 근로 환경이 개선되지 않듯 검찰은 배제하고 특검만 줄줄이 출범하는 행태가 계속되면 여당의 법치주의에 대한 지역의 색안경도 벗겨지지 않는다. 제대로 된 수사와 재판만이 대통령실과 여당의 집권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내 편의 수사 결과가 절대 그럴 리 없다’라는 지극히 유아적이고 비이성적인 아우성은 혐오만 더 깊게 할 뿐이다.

권상국 지역사회부장 ksk@busan.com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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