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 재독 작곡가 심근수 "역사·사회적 의미가 담겨야 진짜 연주"
'뮤지콘' 작곡 발표회 참석 위해 6년 만에 귀국
"연주자-청중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 필요"
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재독 작곡가 심근수 선생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갤러리에서 현대음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박석호 기자
“역사와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짜여져야 진정한 연주회라고 할 수 있죠. 부산에서 그런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꼭 참여해 보고 싶습니다.”
40여 년 전 독일로 떠난 부산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 심근수 선생이 최근 서울 강남구 플랫폼-L에서 열린 현대음악 단체 ‘뮤지콘’(musiCon) 작곡 발표회 참석을 위해 귀국했다. 지난 2019년 방한 이후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움직이지 못하다 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심근수 선생을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갤러리에서 만났다.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난 심근수는 연세대 음대를 졸업한 뒤 1987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스튜트가르트 국립 음대와 엣센 폴크방 음대를 마치고 현지에서 현대음악 작곡 및 연주기획 활동을 활발하게 해오고 있다.
지난 6월엔 독일 뒤셀도르프의 공립 ‘하인리히 하이네 연구소’(Heinrich Heine Institut) 음악 아카이브에 동양인 최초로 등재되기도 했다.(부산일보 6월 26일 자 15면 보도) 그는 2000년 독일 두이스부르크에 설립된 현대음악센터 ‘이어포트’(EarPort)의 공동 설립자이자 음악감독으로 유럽과 미국 등에서 매년 수십 차례의 작품 발표회를 갖고 있다.
그는 “요즘 한국에서 매우 활발하게 연주회가 열리고 있는데 음악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서양음악을 마치 ‘구호 물자’ 처럼 뿌리는 것 같다. 현대와 미래적 의미가 없으면 유흥 문화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대음악은 일반적인 연주 공간에서는 감동을 주기 힘들다”며 “야외 공원이나 일하는 사람들의 숨결이 있었던 폐쇄된 공장 같은 공간에서 연주자와 청중이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부산에 그런 공간이 많다고 들었다. 거기에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한번 제대로 된 음악을 들려주는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작곡의 미래에 대한 걱정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길고 긴 프로세스와 높은 장벽을 경험해야 하는데 AI는 그런 것을 단숨에 해결해 버린다”면서 “인간은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고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발전하는데 AI는 그걸 차단시킨다”고 했다.
그러면서 “AI는 100개가 넘는 인간의 지각과 감각을 축소해 버튼 하나로 수많은 곡을 만들어낸다”며 “작곡가의 역량이 단계별로 상승하는 것을 무시하고 절차와 과정을 빼앗아 가고,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말했다.
심근수는 앞으로도 독일에서 현대음악과 미술, 행위예술 등으로 구성된 작품들을 창작해 정기적으로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재독 작곡가 심근수 선생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갤러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오른쪽은 그의 음악적 동반자인 작곡가 게르하르트 슈태블러 씨. 박석호 기자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