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2025 경주 APEC이 남긴 것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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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문화부 독자여론팀 차장

지난주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정말 많은 뉴스들을 남겼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필두로 한 회원국 정상들이 경주에 속속 집결하면서 각국 간 교류와 협력이 이어지는 ‘외교 슈퍼위크’가 펼쳐졌다. APEC 21개국 정상들은 무역·투자, 디지털·혁신, 포용적 성장 등을 담은 ‘경주 선언’을 채택했으며, 인공지능과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 대한 협력 의지도 확인했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은 1박 2일 짧은 일정으로 방한해 APEC에는 불참한 채 돌아갔지만,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최대 관문’으로 꼽혔던 한미 관세협상이 정상회담을 통해 비교적 성공적으로 일단락됐다. 우리가 요청한 핵 추진 잠수함 개발에 대한 트럼프의 ‘조건부 승인(?)’ 의사도 확보했다. 이어진 시진핑 주석,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각각 처음 마주한 한중, 한일 정상회담도 우호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기본 축으로 하되 중국과의 관계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국익중심 실용외교’ 기본 틀을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건 이런 외교적 성과보다 한국을, 경주를 찾은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이었다. 역대 최대 규모인 1700여 명의 국내외 글로벌 CEO들이 ‘APEC CEO 서밋’에 참석했고, 그 중에서도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뉴스 메이커로 활약했다. 15년 만에 방한한 그가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킨을 먹으면서 ‘소맥’으로 러브샷을 했던 장면은 엄청난 밈(Meme)을 만들어냈다. 뒤이어 사람들의 바이럴(viral)을 타고 치킨 주문을 폭발시켜 결국 깐부치킨 1호점을 임시휴업하게 만들기도 했다.

세계 어느 국가를 방문하더라도 가장 서민적인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젠슨 황이 이번 방한에 앞서 이재용·정의선 회장을 동석자로 초대하고 ‘친한 친구’라는 뜻의 ‘깐부’라는 이름을 가진 치킨집을 선택해 굳이 창가 자리에 앉아 맨손으로 치킨을 뜯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어느 정도 계산된 이벤트였다고 해도, 재산 총합 300조 부자들의 치맥 회동은 해외에서도 이목이 쏠릴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엔비디아 그래픽카드 행사에서 젠슨 황은 “한국 치킨은 세계 최고”라고 외쳤고, “지금의 엔비디아를 만든 건 대한민국이다” “한국이 인공지능(AI) 중심지, 프런티어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에 최신 GPU 26만 장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말하며, 우리에게 큰 선물을 안겨줬다.

천년고도 경주에서의 화려한 일주일은 흐뭇함을 남기고 지나갔다. 안정적 개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성공적으로 APEC 정상회의 주간을 마무리한 정부와 기업은 이제 경주의 성과를 가시화해야 할 차례다. 한미 관세협상의 디테일을 보다 명확하게 잡음 없이 정리하고, AI가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 흐름을 따라가는 걸 넘어 주도할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APEC에서 보여준 ‘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의 문화 유산, 그것이 배경이 된 덕분에 더욱 빛난 K컬처를 보다 널리 세계에 확산시키는 기민한 움직임도 필요하다.

경주국립박물관 신라 금관 특별전을 보기 위한 관람객들의 오픈런이 지난 주말 일찌감치 시작됐다는 뉴스가 반갑고 놀랍다. APEC으로 활기가 실린 경주를 느끼러 늦지 않게 가봐야 할 것만 같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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