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그룹 오너의 고뇌
                    배동진  서울경제부장
엔비디아 젠슨 황 "매순간 파산 직전"
창업자이자 오너로서의 고뇌 토로
이재용·정의선·최태원도 위기 딛고 성공
미국 관세 압박 극복에 오너 힘 작용
                
			지난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코리아’에는 이 지역 주요국 정상들과 함께 글로벌 산업을 주무르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번 APEC에선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간 정상회담도 주목을 받았지만 이들 못지 않게 세계 최대의 인공지능(AI) 반도체칩 기업으로 엔비디아 창업자인 젠슨 황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 글로벌 CEO들의 회동도 관심을 받았다. 이들은 서울에서 다시 만나 K푸드 대표음식인 치맥을 매개로 화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고 ‘AI 팩토리’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현재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이지만 젠슨 황 CEO는 창업한 1990년대 이후 수차례 파산 위기까지 겪은 끝에 성공신화를 이뤘다.
젠슨 황 CEO는 지난 7월 중국 국영 CCTV에 출연해 CEO로서 무엇이 즐거운지 묻는 질문에 “CEO라는 직업은 대부분 그렇게 즐겁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매 순간 우리가 파산 직전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런 위기의식 속에서 회사를 이끌고 있다”고 토로했다.
오너라는 위치는 사장과 달리 회사의 손실과 경영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자리다. M&A(인수합병)와 진로 전환, 기술개발 등의 선택에 대한 고민은 상상 이상이다.
정 회장과 이 회장도 이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대응을 놓고 꽤나 힘든 시기를 보냈다. 정 회장은 기존 한미FTA로 인한 무관세 수출에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25% 관세 부과로 세계 최대 북미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이 회장은 미국 텍사스에 수조 원을 들여서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던 중에 트럼프 대통령의 지분 요구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양국 정부의 관세 협상에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았다.
정 회장의 경우 그룹 총수에 올라선 2020년 무렵 자동차 업계에는 적지않은 위기가 닥쳤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반도체 부품 공급난, 보호무역주의 등이 몰려온 것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는 그룹 차원에서 공급망을 재편하고 직접 구매 네트워크를 확보해 경쟁사보다 빠르게 생산을 정상화시켰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 있는 하이브리드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확대 전략으로 수익도 늘어났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5위에서 3위로 올라섰다.
이 회장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회장 취임 이후 계속된 수익 감소와 주가 하락으로 이건희 선대회장에 못미친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HBM(고대역폭 메모리)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도 밀려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모두 근무했던 한 엔지니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비해 이재용 회장은 실무진에 와닿는 메시지가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회장도 2016년 등기이사에 오른 뒤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합병한 것은 ‘잘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하만은 올 3분기에만 영업이익이 1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알짜기업’이 됐다.
최태원 회장의 하이닉스 인수도 지금은 ‘신의 한수’로 평가받고 있지만 2012년 인수 당시만 해도 그룹 내부에선 “언제 망할지 모르는 적자 기업을 왜 사들이냐”며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최 회장은 인수 직후부터 “메모리의 본질은 속도와 효율”이라며 HBM 시장 진출을 직접 지시했다. 최 회장은 당시 HBM 진출에 대해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투자”라고 했고, 현재 HBM은 SK그룹 최고의 ‘캐시카우’(수익원)가 됐다.
가스터빈의 국산화 성공과 수출로 최근 주가가 급등한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우 박지원 회장의 결단이 한몫했다. 2013년 박 회장은 가스터빈을 국산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계속된 순이익 적자로 인한 경영난 속에서도 7년간 1조 원을 투자했고, 2019년 값진 성과를 냈다. 박 회장은 당시 SNS에 “‘할 수 있을까’란 고민 끝에 결정한 프로젝트가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처럼 한국이 땅덩어리는 작지만 오너들의 ‘뚝심’과 미래를 보는 ‘혜안’은 글로벌 최강이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물러서지 않고 맞설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든든한 오너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주요 업종의 호황 등으로 코스피도 지수 4000을 넘어섰다. 이제 한국이 더 잘 되려면 혼탁한 정치권만 안정화되면 된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