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핵잠'의 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말 경주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가진 한미정상회담의 후일담이 계속되고 있다.
관세 협상 타결도 관심거리였지만,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핵잠)을 갖게 됐다는 게 더 큰 뉴스로 회자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언론에 공개된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한국이 개발하는 핵잠에 사용할 핵연료 공급을 허용해 달라고 대놓고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요청했다. 다음 날 오전 미국으로 떠나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한국의 핵잠 개발을 승인했다, 미국 필리 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세상에 알렸다.
국가 간 핵물질(혹은 기술) 이전과 관련해 이렇게 공개적으로 논의와 결정이 실시간으로 알려진 사례가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이 대통령은 또 이미 지난 8월 첫 한미정상회담에서 공감을 이룬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에 대해 29일 모두발언에서 “실질적 협의가 진척되도록 지시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핵잠은 우리 군의 오랜 꿈이었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 지시로 개발이 시작됐다. 러시아 핵잠 도면과 소형 원자로 기술을 도입해 분석하기도 했지만 우리 조선 기술과 원자로 기술로는 약 1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진척을 보지 못했다. 자주국방을 강력히 내세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핵잠사업은 다시 속도를 낸다. 2003년 5월, 국방부는 3000t급 핵잠사업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6월 2일 사업승인일에서 이름을 딴 전담 부서 ‘362사업단’을 구성했다. 이 비밀 사업은 2004년 한 언론에 공개돼 외교적 파장이 일면서 1년 만에 중단된다. 원자력연구원과 국방과학연구소는 핵잠 추진체인 소형 원자로 연구를 꾸준히 이어갔고, 2012년 일체형 ‘SMART 원자로’가 세계 최초 표준설계인증을 받는다. 이후로도 안전성과 효율을 높이는 연구가 계속돼 냉각재로 납-비스무트 혼합재를 사용하는 방식(LFR)과 용융염에 액체 핵연료를 혼합해 사용하는 방식(MSR)이 실증 연구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
사실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 대화는 초점이 엇갈렸다. 이 대통령은 핵 연료 공급을 요구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핵잠 개발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핵잠 제조 역량은 거의 갖췄고 연료 공급만 필요한 한국, 핵 연료 공급을 매개로 자국 조선산업을 일으키려는 미국의 치열한 수싸움이 남았다. 중국, 일본 등 주변국 견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호진 선임기자 jiny@busan.com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