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인재 유출, 이공계 문제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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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국내 기업 폭풍 성장에 공공부문 위축
문과 인재 로스쿨 금융 쏠림도 장기화
공무원 시험 인기 시들 퇴사자도 급증
공적영역 우수인력 없으면 국민 피해
국가에 ‘인물’ 있어야 사회 전체 유익
공직자 마녀사냥 말고 소중히 대해야

지난 여름 화제가 되었던 다큐멘터리 ‘인재전쟁’에서는 의대에 미친 한국과 공대에 미친 중국을 비교 조망하며 한국이 처한 이공계 위기에 경종을 울렸다. 최상위권 인재들의 의대 진학 쏠림 현상 배경에는 의사라는 전문직이 보장하는 높은 연봉과 직업적 안정성이 자리한다. 이에 대응하여 다큐멘터리에서 모인 결론 중 하나는 이공계 처우 개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였다. 한편 지난달에는 중국 정부에서 카이스트 교수진을 상대로 4억 원의 연봉과 함께 주택과 자녀 학자금을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 제안 메일을 보낸 일이 기사화되었다. 다수의 국가가 재정위기에 빠진 오늘날 중국은 어떻게 이런 투자가 가능할까.


핵심은 국가 예산 문제일 것이다. 물론 중국은 영토가 크고 인구가 많은 국가이기 때문에 예산 규모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가의 재원 확보 채널 이슈도 있다. 국가 예산은 세금과 국채로 조달되고 이 수입은 공공복지를 위한 정책집행에 사용된다. 그런데 중국은 강력한 고정 수입원이 따로 있다. 국유기업들이다. 중국 정부가 직접 소유하고 지배하는 국유기업들은 철강·통신·에너지·항공·은행·의약 등 필수재, 기간산업이거나 자연 독과점이 일어나는 주요 산업에서 운영된다.

한편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국가안보상 핵심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들에 대해 지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반도체 제조사 인텔의 10%와 희토류 채굴업체 MP머티리얼즈의 15% 지분을 인수했다. 자유시장경제 복음을 전파해온 미국에서 이는 놀라운 사건이다. 물론 지분 투자와 국유기업은 양상이 조금 다르지만 추측건대 미국이 중국과 경쟁하며 영향을 받은 부분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는 관세 부과와 각종 행정 수수료 인상 등 정부 수입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IMF 구제금융 처방으로 신자유주의에 휩쓸려 진행했던 공기업 민영화의 과오를 돌아볼 때다. 민간에 넘겨 경영혁신과 효율화를 이뤘다고 하기엔 공기업이 속한 산업 자체가 경쟁이 치열하거나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는 분야가 드물다. 국민들이 지탱하는 수요로 안정성은 국가 특혜사업에 준하는데 매년 성과급과 배당금 잔치를 벌일 때 국가 세수와는 무관하며 도덕적 해이마저 발생한다. 국유기업 수익모델도 아니고 기축통화를 복사하는 마법도 없는 한국은 날로 강해지는 조세 저항에서 공공지출을 줄일 게 아니라면 국가부채를 늘리지 않고 재원을 확보할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직면한 또다른 문제는 인재유출이다. 공무원도, 공기업도 인기가 시들하다. 사기업의 폭풍 성장세에 공공부문 자체가 이미 상당히 위축됐다. 이과 인재들이 의사로 몰린다면 문과 인재들은 로스쿨과 금융권 쏠림 현상이 오래다. 행정고시 선호가 예전 같지 않고 한국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 퇴사자 및 사관학교와 교대 자퇴생이 급증했다는 뉴스들이 보도되었다. 법조계도 이제 상위권 로스쿨생들은 빅펌(대형 로펌)으로 향한다. 이공계 처우 개선 목소리처럼 인문계 역시 공공보다 민간의 인센티브가 훨씬 크기 때문에 공공과 민간의 처우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이 역시도 결국은 국가 예산과 관련하기에 해결도 쉽지 않다.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정책 수립과 실행에 노고하는 공무원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함을 표하는 문화를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공직자를 주기적으로 마녀사냥하고 악마화 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예컨대 이상경 국토부 차관 사퇴는 부동산 관련 “집값 떨어지면 사라”는 실언으로 촉발되었고 사과했지만 여론은 분노했다. 그가 잘했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직 대신 집을 택하고 사퇴한 그의 선택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러나 왕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좌천되거나 사장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해고되는 폭정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도 주의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공직자가 갖춰야 할 도덕성은 기대하되 사람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 그가 정말로 지금 행정부에 필요한 적임자였다면 우리는 인재를 잃은 것이다. 하나만 잃은 것이 아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점점 더 인재들은 민간을 택하지 국가의, 공공의 역할을 맡을 생각을 접을 수 있다. 또한 국민 비위만 맞추는 간신만 남게 된다.

공적영역에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 직접적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몫이다. 인재는 어디서든 자신의 역량을 펼치며 인정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무대가 국가라면 수혜는 범국민적이 되고 인재는 공공재가 되기에 사회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기여 효과는 보다 클 것이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국가에 유능한 인재들이 있다면 그 보상은 개인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멀리 퍼진다. 지금 한국에 인재유출은 이공계 문제만이 아니다. 공공성 전체가 잠식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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